법(권위)와 정치(권력)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일까
나는 15대 국회 말부터 일하기 시작했는데 17대 국회까지 법안을 두 세 개 밖에 제출하지 못했다. 15대 때야 아무 것도 모르던 초짜였고, 16대 때는 행정 일이 주요 업무라서 질의서나 쓸 뿐 개정안까지 만들 여력이 되지 않았다. 17대 때야 비로소 정책을 했는데, 사 년 동안 제출한 게 고작 두 세 개다.
내 개인 역량 문제도 있겠지만, 그 때는 법안 제출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법안 조사부터 성안까지 오로지 의원실에서 다 했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지금과 더 큰 차이는 무엇을 법으로 규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것 때문이었다.
밖에서 보면 온통 문제 투성이지만 모든 문제를 법이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때만 해도 무엇보다 문제라고 해서 모든 일에 법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권력의 자기 절제가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개정할지를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법안 개수로 국회의원이 일하지 않고 논다느니 하는 여론 탓에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할 때부터 제출 법안 개수를 다음 공천 기준에 포함시켰는데, 그래서 인지 일을 잠시 쉬고 19대 국회에 들어갔을 때 국회는 확연히 달랐다. 이전보다 훨씬 심하게 직원과 의원들이 온통 법 만들 생각 뿐이었다. 그 경향이 심해져서 인지 다소 논란이 되는 법안에 대해서 숟가락 얹기 식으로 비슷한 법안을 제출하는 등 법안이 의원 홍보 도구로 사용되는 모습도 보였다.
아마 이런 현상에는 법안을 만들기가 훨씬 수월해진 환경적 요인도 있을 테다. 의도와 문제점만 적어서 의뢰하면 조사부터 성안까지 다 해주는 입조처의 지원이 강화된 게 보좌진으로 다시 들어간 내가 가장 좋아졌다고 느낀 점이었다. 그런데 많은 의원이 이런 의뢰를 하니, 순서가 많이 밀려서 제 때 법안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한편 시민단체를 비롯해 외부와 교류가 많아지면서 이제 법 개정이 필요한 민원을 갖고 오는 이들이 아예 개정안을 갖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의원실은 이제 직접 성안할 필요 없이 그러한 것들에서 문제되는 부분 등을 조정만 하고 제출해도 되는 경우가 적잖이 생겼다. 특히, 그 경우 일부 힘 있는 시민단체는 언론까지 움직여서 이슈 메이킹을 하기에 아주 수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의원들의 법안 만들기 경쟁은 더욱 가열됐다. 어떤 의원이 그런 식으로 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하면, 다른 의원실은 매우 초조해진다. 어서 빨리 우리도 뭔가 그런 걸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법안 만들기 쉬운 환경이고, 개정안 제출과 보도자료가 의원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하니 뭐만 있으면 다 법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그런 유혹을 거스르기 힘들어졌다. 적어도 나는 그런 느낌을 마지막으로 일할 때 많이 받았다.
17대 국회까지는 법이 개입할 일과 문제가 있어도 법이 개입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려고 노력했다면, 이제 점점 그런 개념조차 사라지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았다. 그게 지난 19대 국회 중반이었다.
오늘 여성가족부가 가족 사이 호칭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보도를 봤다. 남편 동생에게는 서방님이라며 존칭하는데, 아내 동생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안을 준비하는 게 정부 여당이라는 점에서 무척 우려 된다. 지난 국회에서는 그런 무분별한 개정안을 견제하고 제어했던 게 행정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정부에서 이런 식의 안을 갖고 나온다면 국회 개정안은 어느 정도 수위일지.....
어떤 일에서 국가 개입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아무리 망가져도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대부분 영역에서 사회구성원이 스스로 개선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법 제도로 반영되야 하고, 극소수 영역에서 스스로 개선이 도저히 안 될 때 국가가 개입해서 조정해야 한다.
사회구성원이 스스로 잘 해결하지 못한다고 다짜고짜 공권력이 개입하려고 하면, 그 사회 주인 자리는 결국 정치 권력이 차지하게 되고 만다.
이만저만 걱정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