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는 어디에 있는가_공공성과 관련한 민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번 사건의 책임자 물색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평소 안전과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측을 주목하는 듯하다. 포털 다음 첫 화면에 뜨도록 배치된 어느 언론사 타이틀 '이번에도 국가는 없었다'처럼 그것은 정부, 구체적으로는 경찰이다.
안전과 질서 유지 관리 담당기관에 책임이 있다면, 다짜고짜 국가(경찰)를 소환할 일일까? 안전과 치안이 근대 국가의 첫번째 임무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물으려면, 그러한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가하는 부분을 먼저 살피는 것이 순서이다. 모두 다 알다시피, 근대 국가의 주인은 민간, 즉 우리 자신 개개인이다. 아무리 안전과 치안 임무를 국가(정부)라는 기구에 맡겼다 해도, 정부는 민간을 써포트하는 기관이라는 원칙적 개념은 변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사설보안업체에 경비를 맡겨도 문을 잘 단속해야 하는 건 보안업체를 고용한 주인의 1차 책무다.
그곳에 간 사람들 잘못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굳이 이 사건의 책임을 안전 및 질서 유지 관리자에게서 찾겠다면, 국가(경찰) 이전에 그 지역 상인회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닐까? 얘기를 들어보면, 사고 지점 주변 길가 곳곳에 할로윈 분장을 해 주는 간이 텐트가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곳에 있던 사람 중에는 바로 응급 텐트를 구별하기 어려웠고,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그토록 큰 사고가 났는지 인지하기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서비스가 있다는 건 그 지역 상인회에서 뭔가를 준비했다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많은 인파를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면, 안전 및 질서 유지 관리에 대한 대비도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나는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온통 국가 국가 국가! 아니면 사고 지역에 간 개개인 둘 중 하나에만 주목한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은 한국에 '시민사회'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특히, 국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을 때 한국인(특히 언론)은 언제나 국가는 민간을 써포트하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선진국에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여는 축제가 적지 않다. 일본만 해도, 농촌 지역에선 마을에서, 도시에선 상가연합회 같은 곳에서 자발적으로 기획부터 준비 그리고 행사를 연다고 한다. 그러면 그 행사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와 질서 등에 대해서도 대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행사만 열고 질서와 안전 사고는 국가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한국은 그런 문화가 없다. 지역축제는 전부 지자체에서 주최한다. 여의도 벚꽃 축제도, 오래 전부터 그냥 벚꽃 구경 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점차 많아지자 영등포구청에서 축제로 만들었다. 이번 할로윈도 비슷하리라 추측한다. 그냥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상가연합회에서 조금 신경 써 서 이런 저런 재미거리를 만들어 놓은 정도 아닐까 싶다. 아마 한국에 민간이 자발적으로 주최하는 행사 문화가 있었다면, 그 지역 연합회와 주민들이 어느 정도 안전 대비도 했을 것이다. 주인의식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이렇게 민간에서 먼저 안전 대비가 있고 나서, 그 다음에 국가를 호명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이다. 세월호나 다리/건물 붕괴 같은 기존 사고와 달리 이번 사건만큼은 국가 책임을 따지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개개인이 아니라), 즉 '민간' 영역의 역할과 책임을 제고해 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것이 앞으로의 사고 방지에도 훨씬 의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