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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ul 20. 2023

행복하려면, 연어가 되어야 하는 인간의 숙명

사랑과 행복은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 부모님을 잉꼬 부부라면서 자기도 다음 생에선 그런 잉꼬 부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친구가 유명 팥집에서 모찌 세트를 사갔는데, 엄마가 아빠 드시라고 자기는 한 개도 안 먹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 말이다. 남편이 잘 먹는 걸 보고 아내가 그걸 먹지 않는 행동이 반드시 남편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가족의 식사 책임자로서 수고를 덜기 위함인 이유도 적지 않을 수 있는데, 아마 친구는 자기 자신이 남편을 별로 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잉꼬 부부의 증거라고 여긴 듯하다. 아무튼 친구는 그만큼 남편에게 불만이 은근히 크다.




다른 한 친구는 며칠 전 내게 어떻게 그렇게 아직도 남편을 좋아할 수 있냐고 물었다. 살다보면 싫은 면을 발견하게 되기 마련인데, 넌 그런게 없냐는 것이었다. 나는 피상적으로 대답할 뿐 핵심을 말하지 못했다. 두 친구에게 조심스레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서로 위하며 사이 좋은 부부 모습을 만드는 건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부 사이 뿐만 아니라 친정 부모, 시부모, 친구 등 모든 관계가 다 그럴 것이다.




남편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의 핵심은 '나'보다 그,이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나'보다 그,이다. 내가 싫고 귀찮고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상대방이 원하면 또는 원하는 대로 하는 태도다. 가령, 시댁 관련한 어떤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귀찮고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을 남편이 내게 참여하길 바라면, 가능한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손해만 볼 것 같아 대부분 거부한다. 아마 친구도 당장 거부할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하면 기고만장해서 마음대로 하려 들 것이라면서(실제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저런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을 위한다 해도 상대방은 내가 요청하는 일이나 행동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난 번에 당신이 요청했던 그 일을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당신이 원했기 때문에 기꺼운 마음을 갖고 했던 것이다. 내가 싫어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원했으니까. 사랑이 그런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부드럽게 잘 얘기하면 거절하는 사람 없다. 적어도 친구 남편은 이를 거절할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친구 또한 이렇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미 자기 아들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을 상대로 친구는 '나'를 내세우는 법이 없다. 귀찮고 싫고 힘들어도 아들이 원하면 한다. 문제는 그 마음이 오직 아들을 대할 때만 생긴다는 것 뿐이다. 




내가 남편에 대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아이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향해 발산되어야 할 모성애가 남편을 향해 발산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도 종종 든다. 하지만 모성애가 한 사람을 향해 발산되면 소진되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마음은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연습되고 훈련되어 일정 기간 후에는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향해 연습된 마음씀은 타인을 향해서도 똑같이 작동될 수 있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자기 만족을 위한 에고적 이기심이 아니라면,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때 자기 자식은 사랑의 전령사가 되는 것이다. 




친구가 나보다 그,를 실천할 깜냥이 충분히 있는데도 실천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은 그런 마음은 본능적으로 흘러나와야 하는 것이라는 착각 때문일 것이다. 자식을 향해서는 별다른 노력 없이 저절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자기가 상대방에게 나보다 그,의 자세를 가질 수 없는 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 즉 상대방의 문제이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내 문제는 내 마음으로 하여금 저절로 '나보다 너'를 취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불운, 그뿐이다. 친구가 사이 좋은 부부 금슬을 이번 생이 아닌 다음 생으로 기약하는 이유, 엄마가 내게 네 부부 사이가 좋은 건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실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핵심 열쇠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 있다.




본능에 기대면 행복은 요원하다. 자식을 대할 때와 달리 남편 등 타인을 대할 때 본능은 '나'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 '나'라는 에고가 고개를 들 때 알아차리고 달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누구인가는 내 행복에서, 사이 좋은 관계에서 부차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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