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는 것과 자존감
올해로 서른 네 번째다. 시댁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전 부치기 뿐이다. 어쩌다 추석엔 송편을, 설에는 만두를 빚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점점 연로해지면서 번거로운 만두 빚기는 거의 하지 않고 송편은 주로 어린 조카에게 빚게 하면서 나와 남편의 주요 임무는 전 부치기가 됐다.
전만 다 부치면, 어머니는 마치 당신 임무를 다 끝낸 듯 우리를 내쫓다시피 집으로 보낸다. 오늘도 시댁에 가니, 가자마자 우리 부부에게 아점을 먹였고, 11시부터 두 시간 정도 전을 부치고 나니까 차 막힌다는 걸 핑계 삼아 얼른 집에 가라고 몰아부치셨다.
신혼 때는 전 부치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몇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 있는 게 고역이었다. 물론 결혼 전에는 부엌 일이라고는 숟가락 놓는 정도 조차 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어머니가 다 만들어 놓은 밑반찬 가져가려고 소분하고 싸느라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정도니까.
그제 연휴 전 마지막 필라테스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니까 상점 곳곳에서 전 부치는 모습이었다. 평소엔 전을 팔지 않는 야채 가게 같은 곳에서도 아주머니들이 전을 부치면서 한쪽에 쌓아두고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전을 찾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의아했다. 전 부치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사 먹는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전을 사 먹는다는 건, 전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는 집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맛만 보는 정도의 양이라면, 그까짓 전 그냥 집에서 조금 후딱 부쳐 먹음 되지, 그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사 먹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새삼스러웠다. 제사 음식도 아닌 동서네랑 우리 먹을 음식 정도하는 것만도 힘들어하던 내가 전 부치는 일을 '그까짓'이라고 생각하다니. 이제 나도 주부가 다 됐구나 싶었다. 사실 그보다는, 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구나,란 생각이 컸다.
주부가 막 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같이 하자고 벌이는 부엌일이 내게 일 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당신 입장에서는 그렇게 많은 양이 아니었던 거구나, 그래서 나도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구나,란 사실도 깨닫는다.
그까짓 전 부치는 게 뭐 대수라고 사 먹나,란 생각을 하는 나라면, 만약 내게 며느리가 생긴다면, 나 역시 명절에 함께 전이나 조금 부치자며 이것저것 준비해 놓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명절 재미라면서.....엄니가 지금 그러듯이.
나이듦 또는 세월(시간)의 장점은 이런 것 같다.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특히나 의심하고 경계하던 타인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나 자신이 사랑받고 있었다는 사실, 나는 언제나 사랑 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202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