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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두려운 이유

'나'를 안다는 건

by 홍주현

방송생활을 오래한 어느 개그맨이 유투브 인터뷰 채널에서 후배 세대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부탁받자 말했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칫 사람 때문에 힘든 이들에게 ‘그냥 다 무시하고 맘 편히 혼자 지내라’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중요하다. 고독을 강조하는 조언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명언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언이 그처럼 많이 강조되는 건, 많은 사람이 그 상태를 회피하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이라하면 흡사 고립이 연상되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고독을 회피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 고독은 그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나 단순히 사회적 회피와는 다른 성격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단절하고 혼자 있으면, 우리는 마지막 남는 관계의 정수이자 가장 불편한 관계인 ‘나’를 대면하게 된다. 따라서 고독의 두려움은 ‘나’라는 인간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이 그것을 거부하는 건, ‘나’를 알아가는 작업이 오히려 타인과의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보다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알아가는 일이 왜 두려워?”


대개 이 작업을 막연히 쉽게 즐길 수 있는 일로 여긴다. 나에 대한 탐구를 주로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같은 피상적인 파악에 그치는 경향 때문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그 여정을 시작하면, 실제로는 내 안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내 밝은 면이나 장점은 외부를 차단할 만큼의 깊은 몰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안에 괜찮은 자기 이미지를 세워두고 적당히 살아가기 때문이다. 소위 ‘자존심’은 이런 이미지의 표현이다. 반면, 어두운 면은 피상적으로만 인식한다. 우월감과 열등감이란 감정이 공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에게 침잠하는 일은, 무의식이 회피하던 내 부족한 모습에 손전등을 비추는 일과 같다. 마치 손전등 하나 들고 블루홀의 어두운 벽면을 관찰하며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잠수부처럼. 홀로 있음의 두려움은 새까만 블루홀을 마주한 잠수부가 해야 할 바로 이 작업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을 해야 할까? 굳이 블루홀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깊이 들어갈수록, 저 멀리 블루홀 밑바닥에서 발산하는 듯한 아름다운 빛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블루홀을 탐험하기 시작하면, 그 빛이 잠수부를 끌어당긴다.


침잠할수록, 깨닫는다. 내가 두려워했던 어두운 면, 우쭐했던 밝은 면조차도 사실은 나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또,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타인의 행동도 그 뿐만 아니라 아니라 내 모습이기도 했음을. 그리고 마침내 그 모두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나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알아가며 블루홀을 깊숙이 관찰하고 대면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한계는 녹아내리고, 나는 그 빛과 하나가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 내 안의 자아와 열등감을 타인과 세상에 투사하며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독을 통해 자신의 깊은 곳까지 침잠하는 용기를 내야만 비로소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과 더 깊고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영화로운 개인>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관점 전환을 통해 얀테의 법칙 가운데 하나인 ‘나는 조금도 특별하거나 잘나지 않다’는 개인주의적 겸손에 다다르는 여정을 15편의 영화 속에서 찾는 이야기다. 이 책은 독자의 그 여정과 함께 하고자 한다.



[그래제본소] 영화로운 개인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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