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억압 기제들
세상에는 많은 억압이 있다. 남성 중심 질서가 여성을 억압하고, 돈이 약자를 억압하며, 장유유서 같은 유교 가치관이 자식과 청년을 억압한다. 또, 지난 평창 올림픽 아이스하키 팀 선수 일처럼 국가 권력이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한다. 많은 사람이 이것이 부당하다며 분노하며 바로잡으려고 애쓴다.
내용이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도 일정 부분 그 분노와 노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억압 대상에 하나도 속하지 않거나 한 번도 그런 대상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구나 언제든 그런 대상이 될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억압에 대한 분노와 거리를 두고 싶다. 비단 내용이나 방법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내게는 더 심각한 억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억압이야말로 내 자유와 능력을 옭아매며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바로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억압이다.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 ~해서는 안 돼! ~해야 돼!
며칠 사이에는 내가 나에 대해서 갖는 느낌마저 그 대상이 됐다. 요즘 나는 내가 싫다. 왜 그런지 샅샅히 찾으면 이유를 발견하거나 아님 만들어내서 그 느낌을 '바로' 잡을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어쨋든, 그러기 전에 내가 나를 떠올릴 때 느낌은 싫다. 그것이 사실이며,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그 느낌이 들자마자 즉각 목소리가 억압하기 시작했다.
'안 돼, 내가 나를 싫어해서는 안 돼! 나는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돼!'
억압은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왜 자꾸 나를 싫어하는 거니,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거니. 내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누가 널 좋아하겠어?'
목소리는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나를 싫어하면 뭔가 큰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왜 그런 믿음을 갖게 됐을까? 아마 세상에 수없이 떠도는 조언 탓일 듯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위로하고 격려하려는 의도에서 한 성현들과 사람들의 조언이다. 감히 그런 말씀에 어긋나는 느낌을 가지니 무서울 수밖에.
그렇지만, 사람이 어케 누군가를 항상 좋아할 수가 있나. 가끔 접하면 그럴 수 있지만,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만큼 싫기도 하다. 그게 자연스러운 인간 아닌가. 하물며 온종일 한 시도 떨어지는 순간 없이 붙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어케 한시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바로 나 자신 아닌가?!
나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조차 이젠 억압이 됐다. 사랑이 오히려 나를 구속한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완전히 자유롭고 싶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사랑에 대해서도! 싫을 땐 그냥 싫은 거다, 나 자신이라도! 싫은 느낌이 들 땐 나는 나를 싫어하고 싶다, 마음껏 마음 놓고 편안하게!
중요한 건 그 느낌에 빠지거나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마음껏 나를 싫어하되 그런 나 자신을 성의껏 지켜보고 있으면, 그 느낌 또한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다. 언제나 항상 그 어떤 예외 없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