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스를 타자화하는 한국인
노블리스 오블리스를 한국처럼 타자화 시켜서 말하는 곳이 있을까. 물론, 후진국에선 많이 그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빌 개이츠와 워렌 버핏으로 대변되는 부자들의 기부 행위와 촉구는 한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이상형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놓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들이 자고 나란 곳의 분위기가 어떠한가,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보고 교육 받은 게 누군가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부르짖는 어른들 모습이었을까? 부자가 모범을 보여야하는 것이라고 교육 받은 나머지 어느 순간 자신이 부자가 됐을 때 지금처럼 기부를 많이 해야겠다 생각한걸까?
그들이 나서서 부자의 기부를 촉구하긴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부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미국인이라서라고 보는 게 더 맞을 테다. 미국의 기부 문화가 얼마나 일상적인지는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우리도 많이 접하고 있다. 부자가 아니고 돈 한 푼 없는 어린 아이도 기부하기 위해 길에 나가서 쥬스를 팔아서라도 돈을 모으는 행위를 한다. 개인의 기부가 일부 부자의 기부에 비해 압도적인 게 미국이다. 그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타자적인 게 아니다. 그들은 바로 자기 자신이 노블리스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누가 노블리스인가? 이 구호는 조선 후기 왕과 양반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그것의 현대적 변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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