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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04. 2019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오래, 즐겁게 할 수 있다

  알파고와의 대결로 이세돌은 일약 스타가 됐다. 경기 직후 그는 가족과 제주도로 휴가를 떠났다. 마치 연예인이 출국할 때처럼, 공항에 간 이세돌 사진이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아무리 바둑기사라지만, 그의 옷차림은 너무나 한결같았다. 휴가 복장이 칙칙한 슈트에 정장 구두라니. 그런데, 그런 아저씨 휴가 가는 모습이 궁금하다고 클릭‧클릭‧클릭, 연신 마우스를 눌러대는 나는 또 뭔가. 옷차림, 백 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송중기도 아닌데… 인공지능과의 대결은 이전에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업계와 여론은 이번 대결을 역사적으로 의미 있다고 본다. 알파고가 스스로 학습하면서 훈련한 첫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이세돌은 인류를 대표해서 인공지능과 두뇌싸움을 벌인 최초의 인물이 됐다. 혹자는 그를 닐 암스트롱과 견준다. 나와 사진기자들이 그런 아저씨 공항 패션에 관심을 가진 게, 이런 후광효과 때문이었나?


  나는 세기의 대결을 거의 다 지켜봤다. 고백하건데, 대결장에서 고민하고 열중하는 그를 보면서 살짝 멋있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다. 자기 일에 몰두할 때 가장 섹시하다는 말이 있다. 차마, 섹시하지는 않았다. 그저 웬일인지, 조금 멋있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을 뿐이다. 그런 칙칙한 차림을 한 아저씨가 휴가 가는 모습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것을 보니, 아마도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로구나, 위안을 삼아본다. (올 때도 같은 복장이더라는…)


  까만 것은 흑돌 이요, 하얀 것은 백돌이로구나. 나는 바둑에 까막눈이다. 아마,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 거의 다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해설자의 설명과 더불어 경기가 그리 지겹지 않았다. 이세돌의 표정 변화가 가장 흥미로웠다. 첫 경기에서는 알파고의 수를 보고,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코웃음 치는 것도 같았다. 해설자도 알파고 오류 났다고 했다. 졌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저돌적 스타일로 바꿨다. 허를 찔러보겠다는 작전이었다. 실패했다. 세 번째가 되자 매우 신중해졌다. 해설자들은 이번에는 이길 것 같다고 설레발쳤다. 졌다. 드디어 네 번째, 묘수가 나왔다. 이겼다. 경기 후, 좋아하는 모습을 감출 수 없는 듯 보였다. 결국, 인터뷰 단상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웃었다. 신나서 인터뷰를 찾아서 봤다. 그는 세 번의 패배가 있었기에, 이번 승리가 더, 그 어느 때보다 값지다고 했다. 마지막 경기 때 나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세기의 대결은 4대1로 인간 이세돌의 대패로 끝났다. 그런데도 이세돌은 스타가 됐다. 볼품없는 외모에 아저씨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사람들은 자꾸 궁금해 한다. 대체 왜? 답은 과정에 있다. 우리는 그가 경기하는 동안 내내 응원했다. 일일이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을 지켜봤다. 경기에 함께 참여한 셈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세돌이 경기를 어떻게 치렀는지를 안다. 바둑은 모르지만, 그가 어떻게 졌고 어떻게 이겼는지는 안다. 첫 판은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두 번째 판은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 말할 수 있다.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스토리를 얻었다.     


  결론으로 보면, 그는 크게 패했다. 세 번을 연속해서 지고, 결국 또 졌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우리도 알고, 그도 안다. 그리고 겨우 한 번이라도 이기면서 조금이나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성장할 것이다.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우리에게 그에게, 이기고 지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터뷰처럼, 세 번의 패배는 안타까웠지만 덕분에 그가 처음 승리했을 때 우리도 더 많이 기뻤다. 과정을 지켜본 덕분에, 패배보다 한 번의 승리 가치를 알 수 있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한 수, 한 수에 몰입했다. 알파고의 한 수, 이어서 이세돌의 한 수를 주목했다. 그 다음 알파고가 어디에 둘지를 기다렸고, 또 이세돌이 방어할지 공격할지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수 한 수, 과정을 지켜보면서 장장 세 네 시간을 보냈다. 무려 닷새를 그렇게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과정을 즐긴 덕분에, 그 오랜 시간동안 그 지루하다는 바둑 경기를 응원할 수 있었다.     


  만약, 이 경기를 결론만 본다면 어떨까?

  4대1이다. 인공지능이 많이 발전했구나. 인간 직업이 많이 사라지겠군. 

  이세돌 실력, 형편없구나. 이제 은퇴해야 하는 건가.

  끝.     

  어떻게 승리하고 패배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모른다. 실은 로버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던 아자왕도 모르고, 이세돌이 경기 도중 뛰어나갔다가 돌아온 것도 모른다. 얘깃거리가 없다. 배울 것도 없다. 한 번의 승리에 어떤 스토리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 오직 알파고가 이겼다는 것만 안다. 결과만 바란다면, 하루 세 네 시간씩 닷새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정적인 바둑 경기가 마치 고문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포기하고 뛰쳐나가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삶은 결국 과정이라지 않는가. 삶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을 때를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 없다.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과정이다. 바둑의 한 수 한 수처럼 한 단계 한 단계가 과정이다. 그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출 때 오래오래, 그나마 즐겁게, 끝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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