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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04. 2019

스노보드 타기와 투자 그리고 공부

  한동안 스노보드 타는 걸 즐긴 적이 있었다. 나는 레슨을 받지 않고, 눈썰매 타듯이 혼자 연습했다. 스노보드를 엣지로 타는 건 줄 모르고, 그냥 남들 타는 겉모습만 보고 직활강도 몇 번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몸소 실천해 보았다. 엣지로 타야한다는 것을 안 순간, 다 배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천천히 내려올 수 있다니… 양팔을 벌리고 낙엽 타듯이 갈지자로 살포시 내려올 때, 나는 설원 위의 발레리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쿨내 진동하는 힙합전사가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능숙한 보더들이 내 코앞에서 휙 몸을 돌려 나를 피해 슝~하고 내려갈 때, 마냥 발레리나 기분에 취해 엉거주춤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발레리나, 이제 안녕~


  방향 바꾸기 연습은 넘어짐의 연속이다. 하강 길에서 별안간 앞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고꾸라지는 건 자연에 대한 공손한 예의다. 잘 해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눈앞에서 천지가 개벽한다. 이어서 나를 발견한다. 드넓은 하늘을 한 아름 안으려는 듯 양팔을 한껏 벌리고, 하얀 눈을 구름 삼아 푹신하게 누워있다. 아이고, 편하다. 이렇게 마냥 누워있으면 좋으련만,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입에 호루라기를 물고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그는, 마치 초원에서 사냥감을 뒤쫓는 굶주린 치타 같다. 에잇, 일어나려는데… 어라, 누가 내 꼬리뼈를 망치로 내리쳤나. 손은 또 왜 이리 부들부들 떨리는 거지. 보드를 탔던 게 아니라 지금, 고주망태가 돼서 길바닥에 쓰러진 건가? 그렇게 한 바탕 구르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나면, 삭신이 말이 아니다. 한 며칠,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나도 모르게, 아이고 아이고…


  그렇게 넘어지고 아파해도 매 해 꾸준히 스키장을 찾았다. 이제 중급에서 웬만하게 탄다. 그런데, 신기한 건 더 이상은 잘 가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시즌이 시작할 즈음이면 한 번 가야지, 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미적미적한다. 나이 들어서가 아니다! 게을러서도 아니다! 재미가 덜 해서다. 그게 신기하다. 그렇게 엎어지고 구르고 넘어지고, 한 번 갔다 오면 아파서 쩔쩔 매도,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갈 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지는 걸 느낄 때가 더 재미있었다. 새벽 같이 일어나 당일로도 다녀오고, 아예 시즌 권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중급에서 타는 정도고, 마음껏 즐기면서 타는 주제도 아니면서 그래도 좀 탄다고, 이제 잘 안 넘어진다고, 재미가 덜 하다.      

  눈 위에서 갈지자를 그리고 있을 때는 몸통을 피아노 박자기처럼 좌우로 흔들며 활강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넘어지지만 않아도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런데 웬걸, 현실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연습할 때가 훨씬 재미있더라니. 썰매는 누구나 쉽게 탄다. 하지만, 스노보드를 즐기려면 넘어지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내게 스노보드를 타는 즐거움은 경사를 내려오는, 결과에 있는 게 아니라 넘어지는 횟수를 줄여 가는, 과정에 있었다. 몸통을 피아노 박자기처럼 흔들며 내려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재미는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하나하나 익히는데서 느꼈던 이유는 당장 내 몸의 균형을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 몸에 줄이 달려 있어서, 넘어져도 별로 아프지 않고 넘어지기 전에 줄이 먼저 나를 끌어당겼다면 아마, 내 신경은 피아노 박자기처럼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쏠려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대체 언제 저렇게 되나 하는 미래를 생각하느라 연습을 게을리 했을 것이다. 아마 제대로 타보기도 전에 흥미를 잃었을 테지.


  결과는 미래다. 과정은 현재다. 이 강렬한 경험으로 말하건대, 재미는 결코 미래, 결과에 있지 않다. 오직 현재, 과정에 있다.     


- 투자와 공부     


  스노보드를 타는 즐거움은 경사를 내려오는데 있는 게 아니라 넘어지는 횟수를 줄여 가는데 있다. 썰매는 누구나 쉽게 탄다. 하지만,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람은 넘어지는 걸 받아들인다. 이 말과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다. "투자의 즐거움은 돈이 아니라 스릴이나 긴장을 느끼는데 있다. 승리는 누구나 좋아한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패배도 받아들인다." 전설적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다. 내가 그의 말에서 투자를 스노보드로 바꿔봤다.


  돈은 결과(미래)고, 스릴이나 긴장은 과정(현재)이다. 승패는 결과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패배는 과정이다. 투자야말로 과정을 즐기지 않고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종목이다. 투자야말로 결과만 바라봐서는 포기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분야다. 투자는 시간 싸움이 반이라고 했다. 앞으로 경기가 둔화되면, 수익의 상당부분을 더더욱 시간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투자한 물건의 가격은 끊임없이 등락을 반복할 것이다. 자산은 기본적으로 등락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상승한다. 사람들이 투자에 덤벼들었다가, 대부분 포기하는 이유가 바로 그 등락을 반복하는 과정을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눈앞에서 내 돈이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는 걸 빤히 지켜봐야하는 건 고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기고 싶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그래서 승자가 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 그 고문 같은 과정을 무조건 참아야만 했다면, 지금 부자가 된 사람들도 결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코스톨라니는 투자를 놀이로 비유한다. “놀이하는 존재인 인간으로 태어나 놀면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바, 놀이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에 의하면, 투자 성공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자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 생각보다 올바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임이다. 오죽하면 ‘머니게임’이라고도 하겠는가.     


  내가 만약 스노보드 타는 연습을 하는 대신, 피아노 박자기같이 내려가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 모습은 학창시절 내 모습이다. 이번 시험을 잘 봐야지. 시험을 잘 보면 부모님이 칭찬해줄 거고, 친구들도 부러워하겠지. 시험을 잘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미래, 결과에 마음을 쏟느라 정작 공부를 게을리 했다. 시험을 잘 봤을 때 좋을 기분에 비하면 지금 공부는 너무 재미없게 느껴졌다.      


  장차 부자가 되는 길을 걸으려면, 지금부터 연습하라. 부자가 되는 길을 걷는 사람은 결과보다 과정을 즐긴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공부의 즐거움은 성적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지식을 하나 아는 것, 작은 목표를 하나 이루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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