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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an 04. 2019

허영심의 원인, 욕심

  중고물품 거래가 활발하다. 인터넷 덕분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쓰던 물건을 팔거나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웬만히 쓰고 불필요한 물건을 쉽게 팔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종이쇼핑백도 사고판다고 한다. 아무리 별별 물품을 다 거래할 수 있다지만 그까짓 쇼핑백을 구지 인터넷으로 사고팔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알고 봤더니, 명품 브랜드의 종이쇼핑백이다. 


  아무리 명품이 좋다지만, 종이쇼핑백까지 산단 말인가. 물건 사면 그냥 주는 건데 대체 얼마에 거래한단 말인가. 일이백 원은 고사하고 일이천 원도 아니다. 평균 이만 원이라고 한다. 동백꽃이 달린 쇼핑백은 무려 삼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거래에도 나름 경제원리가 작용한다. 희소성의 법칙이다. 명품브랜드 쇼핑백을 따로 파는 곳은 없다. 그 브랜드의 물건을 사야만 구할 수 있다. 게다가 가방, 구두 같은 것은 가품이 많다. 잘 만들어서 진짜와 구별하기도 어렵다. 이때 쇼핑백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다. 진짜 브랜드 쇼핑백처럼 잘 만든 가짜는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심지어 구지 명품 물건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과시효과를 낼 수 있다고도 한다. 명품 브랜드 종이쇼핑백만으로도 내가 이런 물건을 쓴다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둔화되는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종이쇼핑백 정도로 소박한 소비에 그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적어도 명품을 사려고 무리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허영을 부리고, 과시하려 하는 걸까?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심리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과시적 소비로 확인하는 자기 존재감은 허구다. 따라서 매번 실패한다. 허무감과 불안만 커진다. 위안을 얻고 싶은 인간은 다시 소비를 되풀이한다. 과시는 실제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언뜻 타인과 비교하고 평가할 때 생기는 마음 같다. 하지만 더 깊이 살피면, 실제 나와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를 비교할 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톨스토이는 말한다. “인간은 분수와 같다. 분자는 자기 실제 모습이며 분모는 자신에 대한 평가다. 분모가 클수록 분자가 작아진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와 비교해서 실제 내가 열등감을 가질 때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이 불만은 욕망을 낳는다. 자신에 대한 평가보다 실제 자기 모습이 더 크기를 바란다. 적어도 그 둘이 일치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갖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 모습을 그렇게 만드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반면, 그런 척 허영을 부리는 것은 손쉽게 즉각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그런 척 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 그러니 비록 가짜일지언정, 손쉽게 바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그것이 바로 욕심이다. 즉, 결과에 합당한 지난한 애씀과 시간이라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그보다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 마음 때문에 허영을 부리고 과시하려는 것이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꼬집어 말한다. “하층계급은 상층계급에 칼을 겨누지 않는다. 대신 모방하고 흉내 내고자 한다.” 명품 브랜드 종이쇼핑백 거래현상에 대한 전문가 진단도 비슷하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명품을 통해서라도 상류층에 속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 내실을 채우기보다 선망하는 대상을 흉내 내면서 허영심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영이나 과시는 왜 경계해야 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자꾸 허영을 부리며 과시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곧 욕심내는 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허영심에 휘둘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욕심이 커진다. 허상을 만들어 쉽게 상황을 모면하는 경우가 한두 번에 그치지 않는다. 처음에 부렸던 작은 욕심이 허영을 거치면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리기 때문이다. 작은 눈뭉치가 눈밭을 구르면 커지는 것과 같다. 결과에 합당한 시간과 노고를 견디는 힘은 점점 약해지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 흉내를 내는 것은 개구리가 황소처럼 보이려고 배를 부풀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과시는 거지가 구걸하는 소리만큼 시끄럽고 훨씬 뻔뻔하기까지 하다.” “좋은 물건을 하나 살 때면 완벽한 치장을 위해서 그에 어울리는 것들 열 개를 더 사야한다. 뒤따라 생기는 욕망을 전부 채우는 것보다 처음 생기는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더 쉽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비단 실속 없이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겉치레 때문에 허영심을 경계하라고 경고한 것이 아니다. 허영심 아래 숨어있는 욕심 에너지가 커져서 습관이 될까 우려했다. 그러면 자기 분수를 잊고 낭비하다가 파산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불평불만이 많아져서 매사에 곤란을 겪기도 할 것이다. 살면서 겪는 고통의 원인은 외부 현실에만 있지 않다. 시기와 질투, 열등감, 자책, 무기력 같이 자기 안에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처럼 자기 내부에 있는 원인 때문에 우리가 더 지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허영심, 즉 욕심에서 비롯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삶을 두 배로 힘들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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