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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Jul 10. 2019

공간을 구성하는 상권과 문화, 그 정체성에 관한 얘기

모종린, <골목길 자본론>, 다산북스, 2017

많은 도시를 가 본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여러 도시를 가 봤다. 여행을 가면 대개 아쉬워서 언젠가 또 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중국 빼고는 거의 다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유독 그렇지 않은 곳이 있었다. 싱가폴이다. 


싱가폴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 갔던 터라 웬만하면 어디든 이국적으로 느끼고, 또 잘 사는 나라라 딱히 별로라 할 게 없을  곳인데도 다시 찾고 싶은 맘이 생기지 않았다. 도시에서 매력을 별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둔감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싱가폴은  그닥 특색이 없는 도시란 인상을 받았다. 널리 알려진대로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며 안전한 곳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저 그랬다.  싱가폴에선 뚜벅이가 거쳐야 하는 곳이 현대적인 쇼핑몰 류와 마치 강남대로처럼 잘 구획된 도로가 많았는데,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싱가폴이야? 혹시 중국 신도시는 아닐까? 아니면 우리나라  재건축해서 새로 지은 건물 어디?'

상해 신도시 블럭 쪽은 돈을 그냥 쳐바른 느낌이 살짝 들었는데, 싱가폴은 상해보다는 오래된  곳이니 그런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걍 그런 느낌이었다. 깨끗한 건 좋지만, 아무 매력 없는, 구지 이런 거 보려고 뱅기  타고 시간과 돈을 들이기엔 가성비, 가심비가 낮은 곳.  


도쿄가 인상적이었던 건, 어딜가나 '아,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일본이구나!'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비단 싱가폴보다  오래 된 도시이어서가 아니다. 일단은 일본인 특유의 디테일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고 나름 추측한다. 도쿄에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건 넘나 당연한데, 차이는 그 안을 채우는 상점들에서 일본의 선명한 색에 있었다. 이걸 디테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여러 번  방문하고 나서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처음 방문한 오사카에서는 내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고, 쿄토는 그냥 너무 일본스러운  곳이라 오히려 그저 그랬고, 그 뒤로도 도시 두 군데를 더 방문한 뒤 방문한 도쿄,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곳에서 가장 일본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현대적인 도시 안을 구성한 상점들이 풍기는 것이고, 그건 그 상점을 꾸리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힌트를 도쿄 박물관에서 찾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루고, 서구 열강과 같은 반열 위에 서기 위해 노력했던 흔적들이 도쿄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프랑스  만국박람회에 조선인을 비롯해서 아시아인을 '전시'했을 정도로 서구인에게 아시아인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시대다. 그 시대에 그런  서구인과 동등한 문화로 인정받기 위해 일본의 문화와 예술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려고 했던 흔적들이다. 자기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 상대로, 수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면서 일본인은 자기 문화와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다루는 연습을 해왔던 것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는 필히 자기 자신을 서구인의 눈으로 보는 시각의 변화도 있었을 것이다. 그 객관화  과정에서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자국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인으로서 행동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때 비로서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에 견줄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이면서 개성 넘치는 독특한 것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는 구호가 있은지 오래다. 한국의 전통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애매하다면 애매한 문화다. 그래서 자조적이다. 대놓고 비아냥 거리거나 아니면 떼쓰듯 아니라고 우긴다. 이런  시각은 정말 한국 문화가 애매해서가 아니라 한국적인 시각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것은 '나는 곧 죽어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식의 꽉 막힌 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서 한발짝 떨어져서 볼 때 잘 보인다.  '어서와 한국은 첨이지' 같은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이 오히려 한국적인 특징을 잘 찾아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따라서  한국적인 것을 우리 스스로 찾아내는 건 한국인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춘 세계인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골목길 자본론>은 이러한 작업을 돕는 책이다. 경제학자인 저자가 세계 곳곳의 골목길을 다니면서 성공한 곳은 왜  성공했는지, 실패한 곳은 왜 실패했는지 보여준다. 중요한 건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니라 듀플리케이션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결국 골목길의  정체성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 길이라고 말한다. 도시 디자인이나 상권 경제학 같은 분야에 문외한이지만, 싱가폴과 도쿄, 두 도시 한  가운데에서 느꼈던 명확한 차이 덕에 싱가폴의 미래를 어둡게, 도쿄의 성공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조언에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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