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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un 04. 2022

믹스처 - 구글까지 번진 인도 카스트 갈등의 근원은?

인도를 정복한 유목민 집단이 만든 위계시스템이 동족혼으로 이어졌기 때문


최근 인도계가 정보통신 산업, 특히 미국 실리콘 벨리의 주요 기업에서 큰 입지를 구축하면서 자연스럽게 카스트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아래 기사에 나타난 구글에서의 카스트별 차별 이슈가 대표적이겠죠.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2/06/03/GHCEWBVMTRHB5NPVOGXBSJ4NLA/


그렇다면, 인도는 왜 아직까지도 카스트 차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요? 심지어 이국만리 미국 땅에서 말입니다. 이 의문을 해소하는 데, 최근 발간된 책 "믹스처"가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고대 인류의 유골에서 발견된 DNA와 현재를 살아가는 각 지역 사람들의 DNA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어디에서 이동해 온 사람들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정복자의 이주와 고대 문명의 멸망, 그리고 새로운 계급 질서의 출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인도입니다. 아래의 <그림 17a>는 인도의 언구 그룹을 보여줍니다. 인도 북서부는 인도-유럽어족이 지배적이며, 인도의 남부 및 동부지역은 드라비다 어족이 압도적입니다. 이와 같은 언의 분포는 오랫동안 새로운 이주민의 유입이 가져온 결과일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유전학의 발전으로 이게 사실이라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지금의 인도인은 매우 다른 두 집단인 '조상형 북인도인(ANI)'과 '조상형 남인도(ASI)'의 피가 섞인 결과이고, 이 두 집단이 섞이기 전의 북인도인과 남인도인은 지금의 유럽인과 동아시아인 만큼 달랐다. (중략) 특히 ASI는 인도를 제외하고는 현대 모든 집단과 관계가 없다. - 책 192쪽


북서쪽에서 대규모 침입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원래 인도에 살던 이(ASI)들이 남쪽으로 밀려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대략 2000~4000년 전으로 추산됩니다.


우리가 분석한 모든 인도인 집단이 4000년 전에서 2000년 전 사이에 이 두 집단의 교잡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인도유럽어를 말하는 집단이 드라비다어를 말하는 집단보다 평균적으로 교잡시점이 현재에 더 가까웠다. - 책 197쪽


초기에 ANI의 침략을 받은 이들이 남쪽(데칸고원)으로 이주했고, 북쪽에 그대로 거주한 이들은 이후 지속적인 ANI의 침략 속에서 계속 피가 섞였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천년 전 인더스 문명이 붕괴하고 '리그 베다'가 작성된 3천년 전 사이, 그때까지는 분리되어 있었던 집단 간에 많은 교잡이 있었다. - 책 198쪽


현재 힌두교의 성전이 만들어진 시기와 인더스 문명의 멸망이 일치한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제기됩니다. 4천년에서 3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왜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을 미칠까요? 그 답은 바로 카스트 제도에 있습니다.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을 금지함에 따라, 아주 예전에 이뤄졌던 참혹한 사건 이후 유전자가 서로 섞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인구 통계학적으로 매우 큰 집단이 있다 해도 아주 적은 데다, 같은 마을에 붙어 사는 자티(약 4천 개에서 4만개 이상으로 분류되는 족내혼 집단) 집단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북유럽인과 남유럽인의 차이보다 두 세 배 크다. - 책 205쪽


구글에서 벌어진 카스트별 차별 사건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이제 실마리가 잡히네요. 미국이나 유럽에 이주한 이들은 아마도 ANI 계열의 상위 카스트(이자 상위 자티)였을 것이고, 뒤늦게 이주의 물결에 참여한 이들은 전혀 다른 말과 피를 가진 ASI 계열의 하위 카스트였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들은 인도인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전혀 사람들이죠. 동일한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개념도 없이 '인도인'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상태의 대륙을 어떻게든 독립시키고 통일된 국가로 유지하려 노력했던 간디를 비롯한 인도 독립운동가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왜 수많은 인도 대륙의 사람들이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에 빠져들었는지도 조금은 이해되는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믹스처"를 통해, 역사와 과학의 아름다운 만남을 만끽 하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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