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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Oct 03. 2021

대서울의 길 - 힘든 이를 눈밖으로 밀어낸 도시, 서울

헌인마을 이야기 그리고 특수학교 건립 과정에서 본 장애우 엄마의 눈물

존경하는 김시덕 교수님의 책 "대서울의 길"을 읽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헌릉로 남쪽에 자리잡은 한센 병력자 정착촌(헌인마을)에 얽힌 옛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329쪽).

"한국에서는 제국주의 일본에 맞선 독립운동, 그리고 공산당과 맞선 자유 민주주의 운동을 한 범주로 묶어서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대 한국을 만든 이 두 가지 활동은 때로 충돌합니다. 1969년 서울 서초구 헌인 마을에서 그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중략)
한센 병력자 환우들의 다섯 자녀가 헌인마을 근처의 대왕국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전염의 위험이 없는 '음성' 상태임을 확인해주는 보건사회부의 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자녀의 등교를 거부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른바 <미감아 사건>입니다. 미감아란 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라는 뜻입니다.
단 30여명을 제외한 전교생이 등교를 계속 거부하자, 당시 최복현 서울시 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하는 게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라며, 헌인 마을의 한센 병력자 부모님들이 땅을 제공하면 분교를 만들어 자녀들을 따로 교육시켜주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다섯 어린이에게 등교 정지 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감아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1196863#home


참고로 최복현 교육감은 식민지 시대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 받은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헌법 제 31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최교육감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330쪽). 


"당시 홍종철 문화교육부 장관은 다른 학교에 다니던 딸 홍미영 양을 대왕국민학교로 전학시켰습니다. 8백 여 학생의 학부모들이 <문교부 장관 자녀 중 한 아이만이라도 전학해 오면 우리 자녀도 등교시키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에 대응한 조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희섭 보건사회부 장관, 홍종관 국립 중앙의료원장, 김탁일 보건국장, 차윤근 의정국장, 유준 의대 교수 등은 다섯 어린이를 각각 한 명씩 자기 집에서 키우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계속해서 다섯 어린이의 등교를 반대하자, 문화교육부는 강북구 수유동에 한국신학대학 부속 국민학교를 신설해 이곳으로 통학시킨다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헌인 마을의 다섯 어린이는 가까운 학교에 입학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직선거리로 30km가 넘는 학교까지 통학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비슷한 일이 최근에 벌어졌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2017년 강서구 폐교 부지에 '특수학교 건립을 허락해 달라'며 반대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은 어머니들의 모습입니다. 당시 어머니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욕을하셔도 좋습니다. 지나가다 때리시면 맞겠습니다. 그런데 장애우를 위한 특수 학교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관련 기사에 대해서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10508/106817452/1


그리고 기적이 벌어졌죠. 2018년 서진학교가 착공되고, 2020년 3월 서진학교 첫 학생이 입학했습니다. 물론 엎드려 울었던 엄마의 아이들 중에 어느 누구도 서진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애초에 이 엄마들의 자녀는 건립 토론회가 진행될 때, 이미 학교를 졸업한 성인거나 다른 특수학교 고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그럼 왜 발벗고 특수학교 건립에 나섰을까요? 


"다음 세대 부모들이 나와 내 자녀가 겪은 어려움을 또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행동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매우 엉망진창입니다. 형편 없는 구석이 너무나 많죠. 한센병 환우, 그리고 장애우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식으로 해결해온 적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센병의 전염에 대한 공포, 그리고 장애우를 가르치는 학교가 생기면 동네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겠죠. 


그러나 서진학교가 최근 문을 연 것처럼, 한국 사회는 아주 느리게나마 전진하고 있습니다. 


김시덕 교수님의 책 "대서울의 길"은 답사여행의 길잡이로도 너무 좋지만,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촉매로서도 매우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오늘 또 '제 인생책'이 한권 추가되었네요. 귀한 책 감사합니다. 끝으로 서진학교 설립을 위해 노력한 어머님들과 서진학교의 설립을 허용해주신 지역 주민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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