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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Aug 31. 2022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세계 최악의 한국 기업 지배구조, 연기금이 역할해 줄 수는 없을까?

한국 기업지배구조 문제에 관해 활발한 저작활동을 하고 있는 이관휘 교수님의 책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으면서 참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옛날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 사건부터 최근의 LG에너지 솔루션까지.. 한국 주식시장은 대주주들에 의한 소액주주 약탈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추석쇠고 나오는 새책에 포함된 <그림>하나를 잠깐 인용하면 아래와 같죠. 상장하자마자 KOSPI200 지수에 특례 편입될 정도의 대형 기업의 신규상장은 '주가 고점'의 강력한 신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장한 기업 중에 상장 당시 시가총액 순위를 유지하는 기업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LG디스플레이가 2004년 상장될 때 시가총액 4위권이었지만, 2022년 8월 말 순위는 60위입니다. 삼성생명은 2010년 상장당시 시가총액 순위 4위였지만, 2022년 8월 말 순위는 28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상장한 날의 고가(high price)가 역사적인 고점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겠죠. 첫 번째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뛰어난 시장 분석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주식시장이 버블 레벨이어서 아주 만족할만한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기회다 싶을 때에만 IPO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주주 및 초기 투자자에 대한 보호예수(Lockup)이 풀리면서 내부자들의 주식 매도 공세가 발생하는 것도 수급의 불균형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제가 모 기관 있던 당시 삼성생명의 장외 대량 거래(Block Deal)로 주가가 급락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국 주식시장은 주가가 조금만 오르기만 하면 만성적인 공급 과잉 부담을 짊어지게 됩니다. 2020년 이후 상장된 하이브나 카카오게임즈 그리고 크레프톤의 주가를 한번만 검색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들어올 때에는 시장을 지배할 것처럼 들어왔지만, 이후에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주식시장의 짐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래 <그림>의 하이브 주가는 그나마 양반이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모양으로 굴러가는 한국 주식시장, 그냥 포기할까요?


저도 이 생각을 하루에도 열 두 번 더 합니다. 그러나 한국 주식시장은 그대로 버리기에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것은 세계에서도 경쟁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이익성장을 기록한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한국의 KOSPI200 지수 구성 종목의 영업이익 추이를 보여주는 데, 2001년 이후 20년 만에 거의 10배 가까운 성장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되었다고 평가 받는 데에는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뿐만 아니라.. 기대 이상의 이익 성장도 한 몫을 한 셈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성장세를 보이는 나라의 주식을 완전히 버리기는 어렵죠. 


그럼 어떻게 해야할가요?


이관휘 교수님은 국민연금이 더 많은 역할을 할 때, 이 문제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밝힙니다. 아래 <논문>은 책에 소개된 단국대 양철원 교수님 논문의 핵심 대목을 캡쳐 한 것인데.. 국민연금의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견을 표시한 이후 10거래일 동안 2% 포인트의 누적 초과수익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매니저 생활하면서 1% 포인트의 초과 수익이 날 때 회식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율을 보유한 경우, 회계 분식의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논문도 책에 소개되어 있더군요. 


충북대학교 전홍민 교수 팀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전체 지분의 5% 이상을 보유한 경우에는 회계적인 이익조정(=회계분식!)의 발생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매우 의미 있게 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보듯, 기업들의 회계 분식으로 주주들의 고통이 끝없이 이어지는 중인데.. 국민연금이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연금 사회주의' 운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한국처럼 기업 지배구조가 엉망인 나라에서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더 많은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가지게 됩니다. 끝으로 귀한 책 쓴 이관휘 교수님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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