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지지는 민주주의를 어떤 식으로 무너뜨리는가?
연휴 기간 중에 김경율 회계사의 새 책 "노빠꾸 인생"을 읽었습니다. 먼저 밝혀둘 것은 저는 김 회계사와 매우 친한 사이이며, 그가 참여연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때 함께 술을 마시면서 위로해준 경험이 있습니다. 즉, 저는 이 책에 대해 시작부터 우호적이며.. 또 친분관계로 인해 아주 편향적인 책읽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광주 이야기, 그리고 광주학살을 전후한 끔찍한 경험은 이 책 덕분에 처음 알았습니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차마 못했던 경험을 읽으면서 저도 눈물이 줄줄 흘렀음을 고백합니다. 특히 광주학살 이후 이른바 *친 여자들이 광주 시내 곳곳에 출몰한 것을 김 회계사가 슬프게 적은 부분에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저도 모르게 떠올리더군요.
제가 삐딱한 사회생활을 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이 사건이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ㅈ일보나 ㄷ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믿고 당시 피해자가 "조작한 사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진실을 알게 된 이후,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즉, "논란이 된 사건이 있으면 일단 중립기어를 박는"게 일상화된 것입니다. 양쪽의 의견을 따져보고, 또 인용보도가 아닌.. 직접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본 다음에 가치 판단하게 되었죠.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른바 정의연 사건은 제가 '우리 편'이라고 믿었던 이들에 대한 신뢰를 버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책 215~216쪽).
정의연과 윤미향에 관련된 의혹은 크게 세 갈래였다. 첫 번째는 차명 계좌, 즉 윤미향 개인 계좌로 후원금을 모금한 것이다.두 번째는 부실 회계 장부, 속칭 숫자의 와꾸가 안 맞는 것이다.회계사들은 그럴 경우 가장 최악의 반응인 '의견 거절'을 낸다. 세번째는 안성 위안부 쉼터 논란이다. 숫자가 끼어들고 표식이 펼쳐지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골치가 아파 손사래를 치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세 번째 의혹에 대한 예를 들어 보면, 정의연과 윤미향은 스틸 하우스 공법으로 안성에 평당 건축비 600만 원짜리 집을지었다. 한국 철강 협회 스틸 하우스 클럽 통계에 의하면 고급의스틸 하우스는 평당 350만~400만 원 내외로 지어진다. 하기는 노무현 재단이 발주해 서울 원서동에 짓고 있는 '노무현 시민 센터'의 평당 건축비가 2천만원 인데 비하면 정의연의 안성 쉼터는 몹시 소박한 집일 지도 모른다.
벌써 슬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 냉정하게 '우리 편'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인정하고 또 개선시켜 나가면 될 일인데.. 이를 무조건 편든 데 있습니다.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피해 호소인'이라고 성추행 피해자를 부른 것부터, 정의연 사건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죠.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것입니다(책 217쪽).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2018)"에서는 전제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네 가지 주요 신호를 도표화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출생으로, 어린 시절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비극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예일 대학교수 후안 린츠(Juan Linz)의 연구를 기반으로 개발한 경고 신호다.
첫 번째 전제주의 행동의 신호는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이다. 헌법을 부정하거나 위반하려는 뜻을 드러내고, 선거제도 철폐 정부 기관 폐쇄·시민권 및 정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사 쿠데타·폭동·집단하는 저항 등과 더불어 선거 불복 등 선거 제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제가 이래서 '부정선거' 운운하는 이들을 싫어합니다. 자기 편이 이긴 선거는 공정선거이고.. 자기가 지지하는 쪽이 지면 부정선거인가요?
전체주의의 또 다른 신호를 살펴보겠습니다(책 218쪽).
전체주의 행동의 두 번째 신호는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이다. 한마디로 정치 경쟁자를 '비인간화' 혹은 '악마화'하며 비난하고 근거 없이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우며 정치 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로는 '외세'와 손잡았다거나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괴뢰이거나 스파이라고 근거도 없이 주장한다.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이 전제주의 행동의 세 번째 신호인데, 이것은 정치 경쟁자에 대한 테러에 가까운 행위들을 '양념’이라고 옹호한 예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네 번째 신호는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으로, 집회 금지·명예 훼손 고소 고발·언론에 대한 법적 대응 등의 징후로 드러난다.
저도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이를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부정적 감정이 치솟더군요. 더 나아가 두 번째 항목 역시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광주학살의 주범을 증오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서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모든 이를 다 학살자이고 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가치관이 다를 뿐, 그들도 국민이며 또 사석에서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라 봅니다. 학살의 주범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해당 정당의 주요 관계자가 이를 깊히 반성한 상황에서도 '적'으로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따라서 저는 한국의 주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학시절의 벗들과 다툰 적도 있고, 또 대통령 선거 직후에는 아예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지지할 정치 세력이 등장하면 좋겠지만, 아마 김 회계사처럼.. 비판적인 지식인 정도의 위치를 유지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