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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Sep 18. 2022

외환위기의 징후를 알아차리는 방법

경상적자와 대내외 금리 역전으로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면?


외환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부분을 감안하여 외환위기의 발생이 나타날 징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나라의 금리인하

1997년 외환위기를 되짚어 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금리가 인상될 때, 한국 금리가 인하되었던 것은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금리차가 역전되면서부터 달러/위안 환율이 상승하는 것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중국에서 2.75%로 차입해서(우대금리를 활용할 수 있는 외국환 은행 기준) 미국의 2년 만기 국채를 매입하면, 자기 돈 한 푼 없이 연 1%포인트의 이자를 챙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환 은행은 이 거래를 무제한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외환시장에서는 'Sell CNY/Buy USD' 거래가 발생함으로써, 환율 상승 압력이 발생합니다.

중국 외환당국이 환율의 상승을 억제하기로 결심했다면, 이번에는 외환보유고가 감소할 것입니다. 외냐하면 외환시장에서 환율 상승 압력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헐어 달러를 계속 팔아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며, 이는 다시 새로운 플레이어의 참여를 부릅니다. 

물론 중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달러와의 금리차가 역전되더라도, 외환보유고가 유지되면 외환위기가 '실행'되지는 않습니다. 


<그림> 중국과 미국의 금리차와 달러에 대한 위안화(CNY) 환율 추이


한국 외환위기 원인은?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것은 외환보유고의 고갈 때문이었는데, 이는 종합금융사의 달러대출 만기 연장(이하 '롤오버')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종금사는 통상 6개월 만기로 해외에서 달러를 차입해서, 이를 한국 기업들에게 장기(3~10년)으로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종금사가 해외에서 돈을 빌려올 때 기준이 되는 런던 은행간 단기금리(LIBOR) 금리가 1996년 초에는 5.1% 내외였는데, 1997년 4월에는 5.9%까지 인상되며 종금사의 이익이 훼손되기 시작했죠. 여기에 한보철강과 기아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기업의 파산으로 종금사의 대출이 부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며, 달러 대출의 만기 연장이 어려워졌습니다. 

종금사들은 이미 돈을 국내 기업에 빌려준 상태였기에, 달러 대출의 만기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융통해야 했습니다. 즉 지금 중국과 비슷하게, 'Sell KRW/Buy USD' 거래가 종금사에 의해 이뤄졌던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환율 상승 압력이 생겼는데, 당시 김영삼 정부는 고정환율제도 사수 의지가 강했기에.. 외환보유고를 헐어서 이를 감당했습니다.

그러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고(태국은 해외에서 달러 차입해, 국내 부동산 대출했다 망했습니다), 10월에는 홍콩까지 환투기 세력 공격을 받으면서 외환보유고가 오링 나버렸습니다. 기업들이나 종금사가 해외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해야 하는 데, 이게 불가능해지니.. 기업과 종금사의 연쇄적인 디폴트가 현실화되었고, 결국 11월 27일 IMF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나라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될 때 외환위기 위험이 높아집니다. 1997년 김영삼 정부가 위기를 인식하고 신속하게 환율을 조정(혹은 자유변동환율제도로의 변경)했다면, IMF 구제금융을 받는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림> 1997년을 전후한 한국 외환보유고 추이(단위: 10억 달러)


경상적자만 나지 않았어도!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종금사의 달러부채 롤오버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경상수지 적자 때문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경상수지(GDP대비, %) 적자가 점점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죠.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외환시장에서 'Sell KRW/Buy USD' 흐름이 지속되 수 밖에 없으니, 환율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환율의 상승을 용인하지 않으면, 결국 외환보유고를 헐어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팔아야 합니다. 이 결과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중이었죠. 

여기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 1994년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금리인상이었습니다. 정책금리가 3%에서 6%로 인상되는 과정에서, 종금사의 달러 대출 이자가 급등하면서 경영을 악화시켰고.. 경영 악화를 공격적인 대출로 만회해보려다 대대적인 손실을 입었다고 볼 수 있죠.


<그림> 한국의 GDP대비 경상수지(%)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한 나라의 대내외 금리차가 역전되고

경상수지가 악화되어 환율 방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며

정책 당국이 신속하게 환율을 조정하거나 고정환율제도를 폐지하지 못할 때 외환위기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국이 터키나 아르헨티나처럼 끝없는 외환위기에 빠져들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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