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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Oct 29. 2022

돈이 보이는 투자의 역사 2 - 사채동결이 증시 부양?

자기 회사에 사채를 빌려준 사장 다수 적발! 기업공개 강제로 이어져

앞에 썼던 글("돈이 보는 주식의 역사" - 한국 증시는 원래 엉망!)에서 한국 증시의 초창기 역사를 공부했는데, 정말 끔찍한 일들이 비일비재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은 재산권이 확보될 때에 성장할 수 있는데, 1962년의 증권파동이나 1972년의 사채동결 조치는 이에 정면으로 거역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1972년 '8.3 사채 동결 조치' 이후에 갑작스럽게 주식시장이 붐을 맞이한 일입니다. 개개인의 재산에 대해 정부가 마음대로 '지급정지'를 걸고 또 '금리통제'마저 가한 나라의 주식시장이 오르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대한민국 금융 잔혹사(2008년)"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약간의 편향이 있긴 합니다만, 한국증시가 왜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대한민국 금융 잔혹사(2008년)"의 176~177쪽(e-book 기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타납니다.


(8.3조치로 신고된) 사채의 분석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신고된 사채의 1/3에 해당되는 1,137억원이 기업주가 자기 기업에 빌려준 사채라는 점이 밝혀졌다. 기업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회사 돈을 배돌려 사채놀이를 하는 기업인들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중략)
이들 악덕 기업인을 단죄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국가적 견지에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준 (수출)기업의 경영자까지 위장 사채업자에 포함된 것을 보고 대노했다. (중략)
은행들은 20개 기업 14인의 기업인들을 횡령/배임/수표 부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연세개발 박용운, 광성공업고정훈, 동해실업 강숙현, 삼호방직 정재호, 한국알미늄 장영봉, 동양고무 현수창, 제너럴서플라이 최경남 등이었다.


검찰에 고발한 것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졌습니다(e-book 기준, 178쪽).


김정렴 비서실장이 제시한 8.3 조치의 전제조건 중 하나가 기업공개였다. 초법적 조치로 일단 기업을 살려주는 대신 기업이 더 이상 개인만의 것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기업공개로 재무구조 개선 및 부의 사회 환원을 통해 사회 전반의 형평을 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1973년 1월 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되고 '우리사주제'가 도입되었다. 기업공개촉진법은 공개 권장을 넘어 대상 기업을 정부가 직접 선정하고 공개를 요구하고 불응할 경우 강력한 규제를 가한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공개대상 기업을 지정, 기업공개를 강력히 촉구하는 5.29 특별조치를 지시했다.
당시 하영기 한국은행 부총재는 "지금까지 기업이 망해도 기업인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통념처럼 돼왔다. 그런 무책임한 사고방식은 이제 버릴 때다. 기업이 망하면 기업주도 망하는 게 당연하다. 기업도 자립·자조·협동하는 새말을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 이번 기업공개 촉구의 진의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말되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주식회사는 경영과 소유가 분리되는 것이며, 기업이 망하더라도 주주들은 자신의 지분만 포기하면 추가적인 손실을 입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8.3대책'이라는 초유의 방법으로 기업들을 지원해주고 기업의 사주들이 사채업자로서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이게 한국에서는 희소해졌습니다

한국의 언론 표현 중에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총수'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주주인 경영자라면, Onwer CEO라는 학계에서 확립된 명칭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기업이 어려워질 때 맨날 '재벌 총수의 사재출연' 이야기가 나옵니다("재벌총수들 사재출연 어디까지 왔나" 기사 참조).


이 결과 한국은 선진구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주식시장 문화가 정착됩니다. 소액주주들은 '손님' 취급 당하는 반면, 재벌 총수들은 기업의 '주인'으로써 전횡을 휘두르고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의 개인 재산을 헌납하는 전통이 생겼죠. 

따라서 기업의 근로자들 입장에서 실질적인 기업의 주인인 '재벌 총수'에게 충성을 다하면, 소액 주주들을 뜨내기 손님처럼 취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기업들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만, 아직까지 저는 그런 기업을 체감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우리사주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 노력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글("돈이 보는 주식의 역사" 165쪽). 그러나, 기업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근로자들은 매우 적었고.. 이 결과 우리 사주를 받은 근로자들은 주가가 오르기만 하면 처분하는 게 일반적인 행태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외환위기 전야의 주식시장 상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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