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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Dec 03. 2022

복지의 원리2 - 저부담/저복지 국가의 기원

수출주도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노동비용을 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지난 시간 "복지의 원리"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정부가 공적연금 및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특히 과도한 복지 시스템이 도입되는 경우 파퓰리즘의 함정에 빠져들 수 있음에 대해 살펴보았죠. 오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이 왜 '저부담/저복지'를 특징으로 하는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이전 편을 못 본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복지의 원리 - 왜 국가가 연금제도를 관리하나?


***


한국이 '저부담/저복지' 국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산업화의 경로에 있다고 합니다(78~78쪽).


한국은 서구 복지국가와 달리 국가주도 산업화를 이루었다. 1960년대 초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와 경제기획원이 주도해 경제발전계획을 세우고 산업화를 시작했다. 방법은 독특하게 수출지향 산업화export-orientedindustrialization였다. 대만과 싱가포르도 비슷한 전략을 세웠다. 나머지 후진국들은 수입품을 자국 상품으로 대체하는 데 목표를 두고, 국내 시장을 보호하며 산업을 키우는 수입대체 산업화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를 채택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국가와 인도를 비롯해 대부분이 그러했다. 국내 상품이 선진국과 경쟁해 수출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를 상대로 수출상품을 만들어 팔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국내 시장이 워낙 작았기 때문이다.


좁은 내수시장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했죠. 그래서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했습니다(78쪽)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산업화 초기에는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지탱해주었다. 60년대에는 농촌에서 거의 무한대로 노동력이 공급되고 임금 수준이 일정하게 유지되었으므로, 특별한 임금 조정기제가 요구되지 않았다. 다만 중화학공업화가 시작되자 숙련노동자 부족에 따른 임금인상이 발생했다. 그러자 70년대 초부터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임금인상 억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과 배제가 강화되었다. 이때의 임금인상 억제는 수출대기업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표 3-1>에서 보듯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기현상을 보였다. 생산직 노동자를 보자. 1973년에 5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100으로 할 때, 10~29인 규모의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이 66.8이었던 것이 1980년에는 89.8까지 좁혀졌다. 지금과는 정반대 현상이었다. 서유럽의 노동운동이 주도한 동일노동-동일임금에 입각한 연대임금제 solidarity wage가 한국에서는 국가주도로 실현된 것이다.


<표 3-1> 기업 규모별 관리직과 생산직 노동자들의 상대 임금 추이(500인 이상 대기업 = 100)

출처: "복지의 원리", 80쪽.


***


한국 역사상 불평등이 완화되었던 시기가 아마 이때일 것 같습니다. 공평하게 임금이 낮았던 시기, 정부는 노동비용의 상승을 유발할 각종 사회보장 제도의 도입을 최대한 늦추었습니다(81쪽).


1974년 도입하기로 법까지 제정했던 했던 국민연금은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침체되자 무기한 연기되었다. 19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될 때도, 기업의 부담능력에 발맞추어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비용부담을 고려해 급여 수준이 낮았음은 물론이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부조의 경우도, 근로연령대인 18세부터 64세까지는 아무리 가난해도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이들에게는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공공근로 일자리가 제공되었다.


노동비용을 낮추는 한편, 세율도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81쪽).


저임금에 복지급여도 얼마 되지 않던 시절에, 국가는 소득세를 뗄 수가 없었다. 대신에 감세정책으로 근로자의 가처분소득을 올려주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웠다. 1971년 세제개편을 통해 감세정책을 공식화하고, 1차 오일쇼크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1974년 긴급조치 3호를 통해 대대적인 감세에 나섰다. 이런 기조는 1970년대 내내 유지되었다.

<표 3-2>에서 보듯이, 소득세의 경우 전 소득계층에서 실효세율이 낮아졌고, 중하위계층은 소득세가 거의 없었으며, 최고소득계층도 5.2%까지 떨어졌다.


80년대 초반, 서구에서 등장했던 이른바 '레이거노믹스'가 이미 한국에서 시행되었던 셈입니다. 가격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산업화의 초기에, 노동비용을 낮추기 위해 임금인상과 복지는 최대한 억제되어야 했기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대신 세금은 낮춰 가처분소득을 최대한 높여주고 근로와 투자를 장려하는 식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부담/저복지' 체제가 자리잡았고, 이 유산이 지금까지 내려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표 3-2> 1970~1980년 소득계층 별 소득세 부담(실효세율, %)

출처: "복지의 원리",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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