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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Dec 27. 2021

전라디언의 굴레 - 토호가 군림하는 지방도시 이야기

대구출신으로, 남 같지 않은 광주 상황에 공감하다  


전라디언, 참으로 기괴한 단어입니다. 기근으로 고향을 떠나 북아메리카로 이주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붙여졌던, 'White Nigger'라는 표현이 떠오르죠. 1980년 광주학살, 아니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지역차별의 역사가 연상됩니다. 광주출신으로 이 단어가 지니고 있는 불쾌함을 잘 알고 있는, 조귀동 작가는 왜 이 단어를 사용해 책을 썼을까요?


저는 아마 '공론화'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화의 성지, 혹은 예향 등으로 불리는 자신의 고향 광주가 겉과 속 모두 문제가 생겼음을 시원하고 보여주고 싶었던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대구 출신입니다. 대구에서도 가장 못사는 동네, 남구 대명동에 제 고향집이 있었죠. 수성구나 혹은 혁신도시 등으로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며, 주저앉아 버린 쇠락해가는 주택단지. 그곳이 제 고향입니다.


물론 광주보다는 사정이 나았었습니다. TK라고 불리며 기세 등등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시절은 저와 상관 없습니다. 대학진학하면서 고향 떠난 후, 제가 대구 출신이라 이익본 것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염색단지가 무너지고, 섬유 회사들이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며 대구경제는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고.. 대구 출신의 정치 엘리트들이 '박해 받는' 이미지를 만들 때, 서울에서 직장인 생활하는 저로서는 그들의 주장에 별로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IMF 때, 저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근무중이었기에.. 어떤 이 보다 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종합주가지수가 1천 포인트에서 2백 포인트 대로 떨어질 때, 증권사 직원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외환위기 닥치는 것을 예상 못한 너네는 어디에 써먹냐"라는 비아냥을 듣던 애널리스트들은, 죄인신세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다 보니.. 저는 고향에 자주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전라디언의 굴레"를 읽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지방 경제는 쇠락해가건만, 특정 정당에 대한 일편단심 지지. 그리고 중앙정부의 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여러 사업들.. 특히 "아시아 문화전당" 같은 거대한 건축물이 지어졌죠. 12년 걸려 지어진 15만 7천 평방미터의 이 장대한 건물군은 서울 양재동 예술의 전당(12만 8천 평방미터)보다 더 큽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대참사라는 게 조귀동 작가의 지적입니다.

2015년 문을 연 아시아 문화전당은 지금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는 애물단지다. 광주시 전역에 문화 고나련 기관을 설치해 문화수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유야무야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아시아 문화전당은 288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는데, 그 절반 가까운 133만 명이 부속시설인 어린이 문화원 방문자였다.
유료 관람객 자료를 보면 처참하다. (중략) 각각 예술극장 1만 5천 명, 문화창조원 2만 명, 문화정보원 2천 명만이 유료 관객이다. (중략) 입장료 수입은 19억 5천만원에 불과했다. (중략) 아시아 문화전당의 시설 운영에 필요한 금액은 인건비 포함해 연 550억원 정도다.
매년 5백억원 이상 영업 손실을 입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책 172~173쪽.


<그림>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의 경관


그런데.. 투자의 효율을 따져보면, 도로나 다리 같은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2017년 김성태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고창담양 고속도로'가 계획 추진 당시에는 하루 3만 5,200대가 다닐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교통량은 절반 수준인 1만 7,700대에 그쳤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도 쾌적하게 통과할 수 있는 이유다. (중략)
텅텅 빈 이들 고속도로는 중앙정부의 지역개발 투자가 더는 큰 효과를 보기 힘든 이유를 잘 보여준다. (중략) 국토연구원은 2018년 보고서에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국내 총생산대비 SOC 투자가 0.8%인 반면, 한국은 2010년 2.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략)
그 동안의 SOC 투자가 누적되며 투자에 따른 편익도 감소했다. (중략)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도로연장이 늘어나는 데 따른 생산성 증가 효과는 2006~2007년 2.6%였는데, 2012~2013년에는 0.4%로 쪼그라 들었다.
지방 SOC 투자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그래도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은 높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런데 정용석 신라대 교수가 광역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분석은 재정투입의 장기적인 효과도 하락 중임을 보여준다. 정 교수는 1987~1997년과 1999~2012년을 각각 나누어비교 했는데, 광주의 경우 2000년대 재정지출 효율이 이전 시기의 30%에 불과했다. 부산은 59%, 그리고 대구는 79% 수준으로 재정의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책 204~205쪽.


<그림> 5,814억원의 건축비가 투입된 천사대교의 모습


많은 돈이 투입되지만 효과는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사회간접자본, 그리고 중후장대 건축물 투자가 이뤄지면 덕을 보는 이들은 소수로 집중될 것입니다. 지역 사회에서 건설업 하는 토호세력들이 그 주인공이겠죠.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광주 출신인 제 아내와 저는 항상 "서울이 그나마 제일 낫다"는 말을 하게되었으니 말입니다.


너무 글이 길어졌네요.. 아마 제 고향 대구를 바라보는 생각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라디언의 굴레"는 감추고 싶은 민낯을 잘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리고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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