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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an 28. 2023

실험의 힘 - 세금을 더 걷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독촉장의 문구를 수정한 것만으로도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

최근 읽은 흥미로운 책 "실험의 힘"은 최근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실험 경제학을 다룬 책입니다. 즉 경제이론이 '선'이니 이대로 하면 된다, 식의 주장에서 벗어나 얼마나 영향이 있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성과를 개선시키려는 움직임이죠.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영국의 '행동과학통찰팀(BIT)'이 거둔 성과입니다(책 22쪽)


BIT는 행동경제학 분석가 데이비드 핼펀David Halpern과 영리하고 야심찬 공무원 오웨인 서비스owain Service의 합작품이었다. 그 팀의 임무는 행동과학을 활용해 정부 정책의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 팀은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그들의 아이디어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정부 기관은 없었다. 그러나 국세청이 행정적으로 귀찮게 생각하던 부문에서 BIT는 기회를 보았다. BIT는 정부 기관들로부터 주목받기 위해 체납자에게 하루빨리 세금을 납부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그러려면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세금 독촉 편지를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적절히 다듬는 것보다 더 나은 시작은 없다고 생각했다.(중략) 

핼펀은 영국 국세청 직원들에게 (세금독촉) 편지를 다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쓴 편지의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실시해 보자고 설득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변화가 손쉽게 이뤄지기는 어렵죠. 그러나 워낙 열정적으로 BIT팀이 매달린 덕분에 역사적인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23쪽).


첫 단계에서, BIT의 실험자들은 편지를 보낼 세금 체납자들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택했다. 그러고는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분류한 후에 한쪽에는 원래의 편지, 다른 쪽에는 약간 수정한 편지를 보냈다.

새 편지에는 원래의 편지에 "지금 선생님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완납하셨습니다."라는 한 문장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체납된 세금을 납부한 사람의 비율이 35.8퍼센트에서 37.8퍼센트로증가했다. 대단치 않게 들릴 수 있겠지만, 총 체납액을 고려하면 수백만 파운드를 징수한 것이 된다.


고작 문구 하나 삽입한 것만으로도 세금 체납율이 2% 포인트나 개선된 것입니다. BIT팀의 노력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24쪽).


할스워스와 BIT는 세금을 독촉하는 편지를 다양하게 다시 쓰며 실험을 계속했다. 한 실험에서는 다음과 같이 다섯 종류의 문장, 즉 지독히 따분해서 첫 데이트에서 결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문장을 추가한 편지를 보냈다.

기본규범: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제때 납부합니다.
국가규범: 영국에서는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제때 납부합니다.
소수자규범: 영국에서는 10명 중 9명이 세금을 제때 납부합니다. 선생님은 아직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극소수에 속해 있습니다. 
공익 획득 규범: 선생님이 세금을 납부한 덕분에 우리 모두가 국민의료 보험, 도로, 학교 같은 중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공익 상실 규범: 선생님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국민의료 보험, 도로, 학교 같은 중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을 기회를 잃게 됩니다.

이런 편지들이 잉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약 17,000명의 체납자에게 보내졌다. 각 문장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보기 전에, 당신 생각에는 어떤 문장이 최상의 결과를 얻었을지 짐작해 보라.


저도 궁금하네요. 어떤 종류의 편지가 가장 효과적이었을까요? 답은 바로 소수자 규범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에 비해 자신이 소수의 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반응했던 것입니다. 


BIT의 실험에서 보듯, 어떤 정책(혹은 광고나 문구 등)을 실행하기에 앞서 간단한 실험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성과를 크게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서울을 비롯한 일부 교육청에서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노트북을 지급한 것을 문제제기하고 싶습니다. 학생 1인당 백만원 안팎에 달하는 고가의 물건을 지급하기 전에 혹시 이런 비슷한 테스트라도 진행해 보았냐고 말입니다.


학령인구 줄어드는 데, 예산은 이전보다 많이 확보하니 '자선사업'하듯 학생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한 것 아닌지 반문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부디 한국 정부, 특히 교육청에서 실험 경제학의 성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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