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춘욱 Jan 18. 2022

마법의 멀티플 - 한국 주식 투자하기 전에 꼭 읽을 책

주식투자하기에 험난한 나라, 한국

한국 주식시장은 투자의 난이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힘들게 저평가된 종목을 골라 투자했더라도, 이게 꼭 수익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일단 저평가된 기업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데다, 호재를 만나 주가가 올라간다 하더라도 지배주주가 이를 ‘용인’할지의 여부를 따져봐야 합니다. 왜 이런 끔찍한 시장이 되었는지에 대해 글을 한편 썼습니다. 


***


2021년 1월에 발간된 책 "마법의 멀티플"은 번역서입니다만, 역자 후기가 정말 좋은 책입니다. 한국 주식시장이 왜 이렇게 난장판이 되었는지 잘 설명하죠. 한국 주식시장의 문제는 먼저 상속세에서 시작합니다(책 240~241쪽).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무척이나 높다. 명목상의 최고세율은 50%지만, 최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60%다. 상속재산이 30억원을 초과하면, 초과분에 대해 최고세율을 적용받는다. 상장사 지배주주는 대부분 최고세율을 적용 받는다는 소리다. (중략) 지배주주의 지분이 50%라면 자녀의 지분은 20%로 줄어들게 된다. 만약 기존 지배주주에게 아내와 여러 자녀가 있다면 지분은 더욱 줄어든다. (중략)

그런데 어떻게 우리나라 기업에 지배주주가 있는걸까?왜 2세, 3세 오너가 존재하는 걸까?


저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한국에 오너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방법은 터널링입니다(책 254쪽)


터널링은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마치 기업에 지하 터널을 뚫어 기업의 부를 빼 가는 것과 같기에 이런 말이 붙었다. 터널링의 형태는 다양하다. 지배주주가 높은 연봉을 가지고 갈 수도 있다. 친인척을 채용하거나 채용한 것처럼 가장해 보수를 빼내는 경우도 있다. 기업의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자산을 비싸게 매입하면서 리베이트나 비자금을 만들 수도 있다. 



제가 감수했던 책 "문 앞의 야만인들"에 이런 사례들이 즐비하게 나오죠. 그러나 회계감사가 강화되고, 또 내부자들 중에서 변심하는 이들도 나올 수 있기에 터널링 만으로 오너가 상속세 납부하는 데 따르는 지분율의 하락을 만회하기에 역부족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나오는 것이 바로 합병입니다(책 255쪽)


(오너 입장에서) 좋은 터널링은 지분 터널링이다. 간단하게 말해 비지배주주의 지분을 빼앗는 터널링이다.
지분 터널링의 대표적인 방법은 지배주주 지분이 높은 기업과 지배주주 지분이 낮은 기업을 합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법률은 터널링을 돕는다. 우리나라 법률은 상장주식의 가치는 시가로, 비상장주식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2대 3으로 가중 평균한 값으로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지배주주는 합병할 때 자신의 지분이 낮은 상장기업의 주가를 낮게 유도한다. 그리고는 지배주주의 지분이 높은 비상장사와 합병한다.
상장사끼리 합병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법률은 상장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늘 지배주주 지분이 높은 상장기업의 주가가 높고 지배주주의 지분이 낮은 상장기업의 주가가 낮을 때 합병이 일어난다. 


오너의 지분율이 낮은 상장기업의 주가를 떨어뜨리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일부러 수주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굳이 실현하지 않을 손실을 반영해 실적을 악화시키는 일도 종종 벌어집니다. 또 투자자들은 이를 알고 오너의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을 매수함으로써, 오너의 합병을 손쉽게 만들어주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ㅜ.ㅜ


뿐만 아니라 '자사주의 마법'도 작동합니다(책 256쪽).


2010년대 대유행했던 자사주의 마법을 이용하는 터널링도 있다. 어떤 기업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하면 원래의 주주는 분할된 두 개 기업의 주식을 모두 가지게 된다. 그런데 기존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두 기업은 법적으로 별개의 법인체가 되므로 지주회사에도 사업회사의 주식이 배정된다.
따라서 지주회사는 사업회사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의 지분을 (분할과정에서) 모두 가진 지배주주가 사업회사의 주식을 양도하는 대가로 지주회사의 자사주를 받으면, 하나의 기업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어졌을 뿐 경제적인 효과는 하나도 없는데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된다.


우리나라에서 자사주 매입이 호재가 아닌 이유가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똑 같은 회사를 쪼갰을 뿐인데, 지배주주는 손쉽게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지배주주가 더 높일 수 있으니, 지배주주는 이제 경영권 방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토록 '지주회사-사업회사' 분할을 했던 이유가 이런데 있습니다. 


결국 이런 여러 편법 덕분에 지배주주는 높은 상속세율에도 불구하고 2세, 3세, 4세까지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상속세는 일부 내야하지만, 이건 터널링을 통해서 일부 해결 가능합니다. 요약하자면 비지배주주가 지배주주의 상속세를 내주는 꼴이 됩니다. 


상황이 이런데 상속세 혹은 합병관련 상법이 개정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편법을 못하게 막을 수도 있습니다만.. 정보력과 각종 네트워크로 무장한 상장사의 지배주주들이 또 다양한 절세(!) 방법을 만들어내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할 때에는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배주주가 상속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일부러 주가를 떨어뜨린 기업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런 여러 함정을 피하는 게 어려운 분들은? 


제가 쓴 책 "돈의 흐름에 올라타라"에 소개된 탑-다운 전략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굳이 개별 종목 매매를 하다 '함정'에 빠질 위험을 지지 말고 시장 전체 혹은 시장의 한 부분(가치주, 성장주, 대형주, 소형주 등)을 매입함으로써 개별 기업에 내재된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장단기금리 역전, '불황의 전조'로 해석되는 이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