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 미국 증시의 순환에서 발견한, 추세 전환의 신호
30년째 이코노미스트 일을 하면서 크게 보아 다섯 번의 장기 파동을 겪었습니다. 1997년의 외환위기, 2001년 ‘9.11 테러’ 및 정보통신 거품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8년 미중 무역분쟁 위기, 그리고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증시 붕괴. 마지막 증시 붕괴 사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에, 어떤 명칭이 붙을지는 모르지만 역사에 이름을 날길 만한 폭락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빈번하게 찾아오는 금융시장의 붕괴로부터 우리의 자산을 어떻게 지키고 키워나갈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최근 출간된 책, ‘베어마켓’은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1921년부터 1982년에 이르는 거의 100년에 걸친 미국 증권시장의 역사를 개관할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다양한 기사 속에서 증시가 긴 침체장을 넘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21년 주식시장이 침체장을 끝내고 상승세로 돌아설 때, 전설적인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는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한 바 있습니다.
“기업들은 공장과 창고에 엄청나게 쌓여 있는 이 같은 재고를 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저가 공세를 펼쳤다. 이 결과 산업별로 서로 다른 속도로 서서히 재고가 소진되기 시작했다. (중략) 재고를 줄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감산했던 많은 원자재 제조업체들이 완전히 문을 닫거나 공장가동 시간을 대폭 줄여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쌓였던 재고는 서서히 줄어갔고 과잉생산 문제도 해소돼 갔다. (중략) 생산이 아직도 정상 수준을 되찾지 못한 만큼, 일단 구매 열풍이 시작되면 전체적인 추세가 반전되면서 상품가격은 다시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가격상승은 언제나 그렇듯 전국적으로 번영을 가져올 것이다. -제시 리버모어(Jesse Livermore)” 141쪽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잘 들어맞을까?
아래 <그림>은 가장 대표적인 상품 중에 하나인 구리가격과 한국 종합주가지수(KOSPI)의 추이를 비교한 것인데, 구리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설 때 한국증시도 강한 상승세를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첫 번째는 구리가격이 충분히 하락하는 과정에서 인플레 압력이 낮아졌고, 이게 중앙은행의 금리인상(및 통화긴축)의 기조를 완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상품가격이 재고부족 등의 이유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개선된 것을 들 수 있겠죠. 전철부터 전기차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는 구리의 가격 반등은 곧 산업활동의 회복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리가격도 변동성이 꽤 큰 편이기에, 당장 시장이 바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베어마켓’에서 소개한 바닥의 다양한 징후들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이 완화되거나, 경기에 민감한 철강업체 주가의 변화, 그리고 소비자들의 지출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표가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부디 많은 투자자들이 이 책 “베어마켓”을 통해, 증시의 순환을 이해하고 또 국면을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끝으로 귀한 책을 발간한 한경BP와 번역자에게도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