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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un 11. 2023

21세기 통화정책 -대공황의 교훈, 돈 가뭄을 막아라!

은행의 자산을 담보 잡아 무제한 대출해주면, 뱅크런 막을 수 있다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벤 버냉키의 책 "21세기 통화정책"에 대한 첫 번째 서평입니다. 혹시 제가 쓴 추천사를 못 읽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라며.. 본격 시작해 보겠습니다.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 추천사 (brunch.co.kr)


***


세계의 경제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를 드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사건 모두 거대한 자산거품의 붕괴로 시작된 불황이 세계경제를 뒤흔들었고, 특히 거대 금융기관의 파산을 유발했다는 유사성이 있죠. 


그러나 2008년 이후 강력한 경기회복이 찾아온 반면, 1929년 이후에는 강력한 디플레가 출현하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나타났을까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제가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통화공급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 <그림>은 대공황을 전후한 미국 은행의 숫자와 은행 예금 추이를 보여주는데, 한 때 3만 개에 이르던 은행이 1933년에는 1만 5천개로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29년 발생한 대공황으로 주식 가격이 폭락하는 가운데, 은행들도 빌려 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며 차례대로 부실화되었습니다. 


특히 이때는 미 연준이 부실 은행에 대해 적기에 개입하지 못했기에, 연쇄적인 은행 뱅크런이 발생했고.. 이게 다시 은행 예금 인출사태로 이어졌습니다. 1928년 은행 예금 잔액은 614억 달러였던 것이 1930년에는 569억 달러가 되고, 1933년에는 421억 달러로 줄어들었습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예금 받아 대출해주는 곳인데, 은행예금이 줄어들면 대출을 회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안 그러면 뱅크런으로 은행이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쇄적인 통화공급의 감소가 출현했습니다. 시중에 풀린 돈들이 계속 은행에 흡수되고, 이게 다시 예금 인출을 통해 각 가정과 기업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연쇄적인 파산 사태가 출현했죠. 


https://fred.stlouisfed.org/graph/?g=162O4


대공황 당시의 수 많은 경제통계를 연구한 학자들, 그 가운데에서도 밀턴 프리드먼과 애나 슈워츠는 "미국 화폐사, 1867~1960-년"를 통해 통화공급의 감소가 대공황을 유발한 핵심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이를 깊게 공부한 벤 버냉키는 2002년에 열린 프리드먼의 90세 생일 파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대공황에 관해 밀턴과 애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연준)의 잘못이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아울러 드립니다. 우리는 다시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 25쪽


그리고 4년 뒤, 벤 버냉키는 연준의장이 되어 금융위기와 싸우게 됩니다.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8년 봄 베어스턴스, 그리고 9월 리만브라더스가 무너지며 연쇄적인 뱅크런이 벌어지자 연준은 단호한 행동에 나섭니다. 


정책금리를 제로로 낮추는 한편, 뱅크런 위험에 처한 은행들의 대출을 담보로 잡고 무제한에 가까운 대출을 해주었죠. 이를 TALF(Term Asset-Backed Securities Loan Facility)라고 부르며, 참고로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는 정부가 부실 금융기관에 부족한 자본을 채워준 것을 뜻합니다. 


일련의 조치 덕분에 아래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2008년을 전후해 총통화 공급은 10% 이상 증가했습니다. 경제전반에 강력한 디플레가 발생했음에도 1929년처럼, 장기 불황을 겪지 않은 이유가 은행기능이 유지되는 가운데 시중에 돈이 넉넉히 공급된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https://fred.stlouisfed.org/graph/?g=162PB


물론 TARP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됩니다. 정부가 부실은행에 자본을 투입함으로써, 잘못을 저지른 자들을 구제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미국은행들이 수백만 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경영진에게 지급함으로써 이 불만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이 발생해 경제가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동안 침체되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소개한 책 "21세기 통화정책"은 연준이 어떤 경로를 거쳐, 1929년과 전혀 다른 정책을 펼치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저는 세계경제가 1929년처럼 대책 없이 장기불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소간의 인플레 위험을 무릅쓰면, 얼마든지 대불황(및 디플레)을 퇴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그럼 일본은 왜 장기불황에 시달리게 되었느냐는 질문이 제기될 텐데.. 이 부분은 다음 번 서평에서 보다 자세히 말씀드릴 것을 약속하며.. 여기서 글을 접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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