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어떻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나?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벤 버냉키의 신작 "21세기 통화정책"을 감수하면서 공부가 정말 많이 되었습니다. 연준의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연준이 왜 인플레 파이터가 되었는지 등에 대해 이렇게 잘 정리된 책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좋은 점은 전문적인 경제서적 중에 가장 쉬운 편에 속한 것입니다. 감수하면서 벤 버냉키가 얼마나 책을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을 갖춘 분들이라면, 아주 즐거운 독서 경험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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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 후 매번 나오는 질문 중에 하나가 연준의 정책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 우리는 연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1년에 8번씩 회의가 열린다는 것, 그리고 연준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양대 책무를 지고 있으며 매번 의회 청문회에서 연준 의장이 의원들에게 질책 당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지 않죠. 특히 어떤 이들은 연준이 민간 은행의 협의체에 불과하며 월가의 유태인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저도 음모론을 재미있게 보지만, 현실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역대 연준 의장 중에 유태인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연준의 멤버는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친다는 것을 알아 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준의 이사 7명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쳐 총 14년간 단임제로 일하며, 연준 의장과 부의장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치되 임기는 4년입니다. 자신이 임명한 연준 의장, 파월을 임기 만료 전에 해고하려다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연준 의장은 임기 만료 전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력을 도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연준 멤버의 임기가 시차를 두고 구성되는 이유는 닉슨 대통령 시절 발생했던 치명적인 인플레를 경험한 후, 연준이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되는 게 국가 전체의 이익에 도움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준 멤버들이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완전 무결한 이들은 아닙니다. 기준금리(한국은 환매조건부 채권, 미국은 연방기금금리를 뜻함)를 결정하는 업무를 맡은 이들이 내부 정보를 활용해 주식에 투자했다는 의혹을 제기 받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 사건 이후 연준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의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해 정책을 평가받곤 합니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은 연준의 은행 감독권한을 박탈하는 법안을 만들어 의회에 지속적으로 상정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연준의 구성원들은 “지금 하는 행동인 연준의 독립성은 물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독립성이 갖춰진다고 해서 연준이 늘 올바른 경제정책을 시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중반이겠죠. 역사상 가장 강대한 권력을 자랑하던 그린스펀 의장 시절, 부동산시장에서 발생한 거품은 이후 10여년에 걸쳐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너무나 큰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만 부동산 버블이 발생한 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으니 이게 미국 연준 만의 책임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준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권력을 감안할 때 “연준이 아니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저절로 던지게 되더군요. 세계 경제의 수장 역할을 하는 연준의 영향력과 파급력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비난 받고 공격 당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은 후, 저는 금융정책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며 또 연준이 어떤 고민 속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제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정말 큰 도움을 줄 교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학 원론에서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나빠지고 실업률이 상승한다고 배웠는데, 어떨 때에는 그게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교수님과 재미있는 토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이 책이 나왔다면 더 즐겁게 경제공부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들더군요. 물론 투자, 특히 외환 및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도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통화가치와 주식시장의 추세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금리이고, 금리는 연준이 경제의 어떤 부분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좌우되는 면이 크니 말입니다.
끝으로 좋은 책 번역한 역자님과 출판사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또 한권의 인생 책 감수를 마치고 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2023년 3월 이코노미스트 홍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