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이동 비용 절감과 ICT 혁명에 따른 지식의 손쉬운 전파 때문
지난 해 읽었던 책 중에서 "그레이트 컨버전스"는 오랫 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 걸친 세계화의 흐름을 분석하는데, 세계화란 "생산과 소비의 분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급자족 생활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과 적극적으로 교환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류의 세계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그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상품의 이동 비용' 문제였습니다. 예전 중국 한나라와 로마가 교류할 때, 금이나 은 그리고 비단 같은 사치품이 주된 상거래의 대상이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휴대하기 편하며 값어치가 높은 상품만 원거리 무역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증기선이 19세기에 발명되고, 20세기 중반 컨테이너 선까지 출현하면서 아래의 첫 번째 <그림>처럼 물류비용이 급격히 감소하는 가운데, 세계 수출량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습니다("그레이트 컨버전스" 62쪽).
그러나.. 이와 같은 물류비용의 절감은 남북문제를 만들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선진국(=북쪽)에서 생산된 값싸고 품질 좋은 공산품이 개도국(=남쪽)으로 몰려든 반면.. 개도국은 선진국에게 원자재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물건을 수출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아래 <그림>처럼 남쪽의 나라들은 높은 관세로 자신의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그레이트 컨버전스" 114쪽).
<그림>을 보면 1990년대 중반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림> 1965년 이후 개도국의 관세율 변화
그 이유는 바로 'ICT혁명으로 지식의 이동 비용이 절감'된 데 있다는 것이 리처드 볼드윈의 주장입니다. 즉 이전에는 개도국에 아주 단순한 공정을 가진 저가품 정도만 투자하던 선진국 기업들이 정보통신 제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까지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고부가가치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게 부과하면 안됩니다. 핵심 부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한 후, 다시 수출하는 데 비용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지식의 이동비용이 줄어드는 게 개도국 생산기지 건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리처드 볼드윈은 국제통화 요금의 가파른 하락과 인터넷 보급이 얼마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였는지 생각해보라고 반문합니다. 특히 '이동 비용'이 이미 급격히 절감되었기에, 선진국의 기술자들이 개도국의 근로자 교육을 위해 방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죠. 물론, 이런 조건의 변화가 모든 개도국을 바꿔 놓은 것은 아닙니다. 교육수준이 높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하며, 이미 투자가 진행되어 '클러스터'를 만들기 유리한 곳 위주로 성장이 촉진되었죠.
이런 식으로 성공의 사다리를 밟아 간 나라가 "그레이트 컨버전스"에서는 I6라고 묘사됩니다. 중국과 한국, 인도 등의 국가가 그것이죠. 한국이 여기에 엮기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세계화의 진행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더 나아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낳게 될 것인지 고민하는 데 도움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