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한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했나?

칩워(3) - 적의 적은 친구다!

최근 열심히 읽는 책, 칩워를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만나.. 지난 번에 다룬 내용을 짧게 복습하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메모리용 반도체 시장의 국가별 점유율인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이 일본의 지위를 빼앗고 1위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림> 세계 메모리 반도체 국가별 점유율(%)

How Korea Became the Hub of the Memory Industry (monolithic3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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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의문을 풀어보겠습니다(243쪽).

80년대 초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느꼈다. 실리콘밸리와 일본 사이에 벌어진 처절한 D램 경쟁이 그 변화의 시작이었다. 그무렵 한국 정부는 반도체를 우선 산업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병철 회장은 1982년 봄 캘리포니아의 HP 공장을 방문해 그 회사의 기술을 보며 감탄했다. HP가 팔로알토의 차고에서 시작해 이토록 거대한 테크 공룡이 되었다면, 채소와 건어물을 팔던 삼성 역시 같은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가이드 역할을 맡은 HP 직원은 "이게 다 반도체 덕분이죠"라고 말했다. 

이병철회장이 품은 오랜 꿈, 즉 지속가능하면서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야망이 현실로 부각되는 순간이었죠. 그러나 이병철 회장의 의지만으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도체 산업은 십 수년에 걸친 오랜 투자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때 미국의 인텔이 등장했습니다(245쪽)

실리콘밸리는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일본의 지배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한국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밥 노이스는 "한국인들은 일본 보다 더 저가로 판매할 테니, 일본이 덤핑을 치더라도 세계 D램 시장을 독접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고 예측했다. 그리하여 인텔은 한국의 반도체 생산자들을 환영했다. 인텔은 80년대 삼성과 함께 합작투자에 합의한 실리콘밸리 기업 중 하나다. 

즉,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격언이 여기서 나온 말이죠. 실리콘 밸리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도 한국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245쪽).

미국과 일본의 무역분쟁도 한국기업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중략) 1986년 일본은 D램의 대미 수출량을 제한하며 낮은 가격에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한국기업들은 더 많은 D램을 값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물론 미국도 공짜로 이 모든 일을 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D램 생산장비는 이미 필요 없었죠. 왜냐하면 인텔은 D램산업을 떠나 더 큰 미래가 보장된 CPU 산업에 모든 장비와 인력을 집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PC 산업의 윈텔(윈도우+인텔) 동맹의 출범으로 만들어질 거대한 시장의 출현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280쪽).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PC 시대가 오는 것을 놓쳤다는 데 있다. 일본의 반도체 회사중 윈텔 동맹의 출현으로 PC 시장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를 때, 제대로 대응한 회사는 NEC 정도에 불과했다. (중략) 인텔에게 CPU 시장은 죽고 사는 문제였다. 반면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은 이미 높은 시장점유율을 누리고 있었고 금융비용마저 낮았던 탓에, CPU 시장을 무시했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 반도체 패전"이 더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영원할 것 같았던 일본 반도체의 패권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 정말 IT 업계는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어제 읽은 책 - 28. 일본 반도체 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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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전에 올린 '칩워'에 대한 서평을 못 본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칩워 - 반도체는 석유처럼 캐낼 수 있는 게 아니다! (brunch.co.kr)

일본 반도체 몰락의 시작은? (brun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