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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Jul 29. 2023

한국의 미래는 이탈리아형 포퓰리즘 국가인가?

"이탈리아로 가는 길" by 조귀동(2023)

최근 발간된 조귀동 작가의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재미있으면서도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아직 한국에 희망이 남아 있다 보지만.. 조 작가의 주장을 완전히 거부하기에는 그의 주장이 가진 근거들이 매우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 | 조귀동 - 교보문고 (kyobobook.co.kr)


***


책 서문에 해당하는 18쪽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국 정치의 미래는 (중략) 이탈리아에 가깝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십 년간 유지되던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의 반反공산당 동맹이 사회·경제 구조 변화에 무너지고 1994년 총선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포르자이탈리아)'가 집권당이 되면서 포퓰리즘 전성시대가 열렸다. (중략)

전진이탈리아뿐만 아니라 극우 ‘국민동맹AN', 북부 지역주의를 내건 '북부동맹LN'도 약진했다. 2018년 총선에서는 중도 좌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Mss’이 최다 득표를 했고, 2022년 총선 결과 포스트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의형제들Fal'이 집권당이 됐다. 


G7 국가 이탈리아는 어쩌다 파퓰리즘 국가가 되었을까요? 그 답은 이탈리아가 가진 경제와 사회의 이중구조 때문이라고 합니다(19쪽).


이탈리아는 한국과 비슷하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산업화를 겪었다. 1958~1963년 사이의 연 평균 5.8%의 성장을 달성하며 (이탈리아의) ‘경제기적'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한국 못지않게 수출 주도 성장 정책을 폈고, 이 기간 수출은 연평균 16%씩 늘어났다. 자동차·모터사이클 · 재봉틀 · 냉장고 등 내구 소비재와 섬유.의류 등 비내구 소비재, 철강·화학 등 중간재가 골고루 성장했다. 70년대 잠깐 어려움을 겪었지만 80년대 '제2차 경제 기적'으로 호시절을 맞았다. 영국에 이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에 진입한 것도 이때다. (중략)

하지만 방만한 공공 부문과 만성적 재정적자, 인위적 경기 부양에 대한 의존, 낮은 생산성, 높은 인건비투자 부진,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 등 70년대부터 문제로 지적되어 온 것들이 전혀 바뀌지 않으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중략) 경제가 정체를 면치 못하면서 2021년 1인당 GDP(3만 1,288달러)에서 한국(3만1,497달러)에 처음 추월당하게 됐다.

또한 이탈리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 구조가 강하다. 이중 구조는 단순히 노동시장 지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연금 등 사회복지가 일자리 지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이것이 그대로 사회복지의 이중 구조를 낳는다. (중략) 청년들이 집을 사는 데 큰 부담을느끼는 행태도 유사하다. 심지어 유럽에서 출산율과 혼인율이 가장 낮은 사회라는 점도 닮았다. 경제 구조에 더해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라는 점이 저출산의 요인으로 손꼽힌다. 


***


일단 이탈리아와 한국은 한 가지 점에서 분명히 다릅니다. 그것은 경제의 생산성, 혹은 혁신 추구 능력입니다. 아래 <그림>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을 보여줍니다. 총요소생산성이란, 노동이나 자본의 투입 없이 달성한 생산성의 향상을 뜻하죠.


즉 기계를 더 투입하거나 근로자를 추가로 고용하지 않고서도 생산의 효율을 끌어 올린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라고 볼 수 있죠. 언론에서 종종 이야기하는 혁신 국가란, 바로 총요소생산성이 꾸준히 증가하는 나라를 뜻합니다.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R&D(연구개발) 투자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2022년 한 해에만 약 27조원 이상의 돈을 연구개발에 쏟아 부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자를 따돌릴 혁신적인 제품/생산기법 등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브랜드 가치를 높여,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것입니다. 즉 기업들의 제품 단가 인상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애플이나 테슬라 같은 명품 제조업 브랜드를 가진 미국이 혁신 국가로 칭송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세 번째 방법은 혁신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실리콘 밸리의 테크 기업들처럼,  "부자되겠다"는 열망에 가득찬 젊은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또 창업에 나서며 경제전반에 강력한 경쟁 압력을 부여하는 것이죠. 즉, 기존 기업들도 "이대로 가면 우리도 망한다"는 경계심을 품고 열심히 혁신을 추구하게 되겠죠. 

Productivity - Multifactor productivity - OECD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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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 세 가지 중에 2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R&D 투자와 열정적인 창업 붐을 경험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세 번째 항목에 대해서는 저도 점점 기대 수준을 낮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이탈리아처럼 파퓰리즘이 대두 되면서 "한번 해 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조 작가의 책 17쪽에 아주 인상적인 문구가 눈에 띄네요.


(파퓰리즘은) "현실주의, 근면함, 성실성 등 민중이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윤리적 자질을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기득권의 위선·비효율성·부패와 대비시키는" 일종의 정신상태로 보기도 한다.


즉 트럼프가 이야기하듯, 자신만 애국자고 나머지는 '나라 팔아 먹는 무리'들로 몰아 붙이는 것입니다. 오래 된 친구들과 만들어 놓은 단톡방이 최근 폭파되는 과정이 이와 비슷합니다. 단톡방에 A가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퍼 나르고, 이어 시민들의 서명에 동참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이에 대해 "나는 두 진영 다 똑 같아 보인다"는 반박이 나오고, 열이 오른 A는 상대방은 비국민 혹은 비애국자(및 독재정부의 앞잡이)로 지칭하며 단톡방에서 연이은 탈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서 토론을 기대하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 작가의 글을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에서 포퓰리즘 정치는 이미 주류에 편입됐다. 두 정당 모두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중략) 있다. 여기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은 '적'을 설정하고, 적을 타도하는 것만이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실질적인 목표(다시 말해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는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세계관에는 순수한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정당을 비롯한 다른 매개는 배제되고, 지도자와 대중은 직접 연결된다. 정치인 입장에서 자신만의 '군대'나 '영지'를 가질 수 있는 셈이다. 나라와 지역을 불문하고 포퓰리즘적 정치 행태가 계속 나타나는 이유다.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건 정치에서 소외된 '뒤처진 사람들'의 분노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수요 측면 요인과 이를 잘 활용해 특정 정치인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는 공급 측면 요인이 결합한 결과다. 팬덤 정치는 근본적으로 정체성 정치이고, 이때 미지근한 타협과 협상은 금기시된다. 


제가 왜 조작가의 책을 추천하는지 아시겠죠?


50대 중반에 이른 동창들이 서로 페절하고 차단하는 과정을 보면서, 한국도 이제는 서서히 "한 번 해 보자"는 분위기 만들기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는 생각 들었고..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대가 했던 모든 정책을 비토하는 일이 벌어지며, 정책의 연속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이 대두되더군요. 그리고 이 모두는 창업가들의 위축시키고 열정을 가진 이들을 지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래는 제가 조귀동 작가의 이전 책에 대한 서평 링크입니다. 


전라디언의 굴레 - 토호가 군림하는 지방도시 이야기 (brunch.co.kr)


https://youtu.be/87wTq-F_b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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