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경단에 대한 공포와 얼치기 경제학자의 만남 때문(격변과 균형3)
김용범 전(前) 차관이 쓴 책 "격변과 균형"에 대한 세 번째 서평입니다. 책 61쪽을 보면 2010년부터 미국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이 서둘러 재정긴축에 나선 배경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2010년 들어 미국 경제는 서서히 위기의 초기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 기미를 보였다. (중략)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채권자경단'에 대한 공포가 오바마 행정부 경제팀 내에서 대두되었다. 채권자경단이란, 국가 채무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시장의 신뢰가 무너져 국채 이자율이 급등하고 투자자들이 국채를 투매할 것이라는 재정긴축의 논리다.
이후 끔찍한 일이 벌어졌죠. 지난 시간에 다룬 것처럼, 남유럽 국가에 대한 긴축 요구가 집행되었고.. 미국도 2011년 더블딥 위험을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 것은 명망 있는 경제학자가 엉터리 분석을 제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책 "숫자를 읽는 힘"의 98쪽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하바드 대학의 로고프와 라인하르트는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90%를 넘는 지점이 경기 침체에 빠지는 티핑 포인트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라는 이유로 이들의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사실의 진위는 차지하고 하버드 대학의 권위있는 경제학자의 주장이다 보니 영향력을 획득했죠. 특히 2010년을 전후해 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90%를 돌파했다는 것이 더욱 로고프-라인하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림> 미국의 GDP대비 정부부배 비율 추이
그러나 로고프-라인하트의 주장은 편향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책 "숫자를 읽는 힘"의 98쪽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로고프-라인하트가 분석에 사용한) 20개 선진국 국가 원 통계에는 스프레드시트 30번째 열부터 49번째 열까지 알파벳 역순으로 입력되어 있다. 그런데, '로고프-라인하트'는 30번째 열부터 44번째 열까지만 분석에 사용했다. 즉 15개 나라의 통계만 활용하고 나머지 5개 나라(호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오스트리아)가 빠진 것이다. 문제는 이 계산 누락으로 인해, '로고프-라인하트'의 분석은 결괏값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계산에 빠진 다섯 나라 중 세 나라가 GDP대비 국가부채가 90%를 넘었을 때에도 경제성장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들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취사선택해서 "GDP대비 국가부채 90% 넘으면 성장률이 급락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선정적이고 근거 없는 주장은 당시 재정긴축 정책 추진을 옹호하던 이들에게 적극 수용되어 대대적인 긴축정책으로의 전환이 나타났죠.
그리고 유럽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에 잘 나타난 것처럼, 유럽 경제는 지난 23년 동안 단 28% 성장하는 데 그쳤을 뿐이며..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10%도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림> 유로화 출범 이후 주요국 GDP 추이
김용범 전(前) 차관의 책 "격변과 균형" 덕분에, 잊고 지냈던 '로고프-라인하트' 스캔들이 다시 떠올랐네요. 오늘 소개한 책 "격변과 균형" 그리고 "숫자를 읽는 힘" 모두 좋은 책이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독서, 행복한 인생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