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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Apr 08. 2022

추월의 시대 - 먼저 '매를 맞은' 나라, 한국 이야기

첨단산업에서 한국은 어떻게 경쟁력을 획득했나?

수많은 이들이 한국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다른 나라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나라들만 비교합니다. 대표적인 비교대상 국가가 미국 아니면 독일, 일본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선진국이 있지만.. 한국의 비교 상대는 항상 미국 일본 독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당연한 일인 것이.. 한국이 지난 10년간 가장 생산성의 향상 속도가 빠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에서 작성한 보고서(『OECD Compendium of Productivity Indicators』)에서 가져온 아래 <그림>을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듯.. 2010~2019년 동안 생산성 향상률 1위 국가는 한국으로 연 2.6% 개선되었습니다. 참고로 생산성 향상률 꼴지는 그리스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입니다. 

"이러다 나라 망한다!" 같은 이야기는 이 세 나라에 할 이야기인데, 한국에게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을 따름입니다. 



물론 한국에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의 생산성 수준만 해도 OECD 하위권이죠. 그런 데 이런 식의 비교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는 200년 전에 산업혁명 시작했는데, 한국은 빨라 봐야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중반에야 산업화 시작했으니 당연히 절대적인 생산성 수준은 낮을 수 밖에 없죠. 


따라서 열심히 생산성 향상 위해 노력한 것은 칭찬하고, 앞으로 더욱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일단 "이 나라는 망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니 답답한 것이죠.


그런면에서 보면 『추월의 시대』는 일독의 가치가 넘칩니다. 특히 책의 7장이 압권입니다. 일단 한국이 로봇 및 CNC 공작기계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도입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책 224쪽).

한국이 산업용 로봇 및 CNC 공작기계를 다른 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한국의 제조업이 워낙 자동화를 도입하기 쉬운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의 노동자와 기업 간에 불신이 심각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뼈를 때리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독일이 뛰어난 근로자를 육성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한국은 숙련 근로자를 육성하는 대신 더 많은 기계를 도입해 공정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대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발전한 것은 당연하게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독일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겠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책 225쪽). 

숙련 노동자가 담당해야 할 공정을 기계가 담당하면서, 이를 통제할 엔지니어의 부담은 더욱 과중되었다. 한국 제조업이 이렇게 자리를 잡은 데에는 노사갈등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숙련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노동자 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사 간 신뢰도가 바닥이고 정보도 서로 공유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회사측은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에 (자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중략) 결국 현장에는 중숙련 이하의 노동자는 넘쳐나지만 숙련공은 부족한 비효율이 발생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죠. 강한 교섭력을 갖춘 제조 대기업 노동조합은 (1987~1988년에 걸쳐)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쟁취했고, 이 과정에서 고용의 경직성까지 높아졌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정규직 근로자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한편, 자동화를 추진하며 계약직 근로자를 외주 채용하는 방향으로 나간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이 엔지니어였습니다(책 227쪽).

한국기업들은 R&D 연구 인력 만을 충원하는 유럽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유럽식이었다면 엔지니어의 임무를 원천기술을 개발해 특허내고, 이 특허를 기업의 비밀로 만들어 시제품을 내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현장에서는 생산식 숙련 근로자가 부족하기에, 엔지니어를 그렇게 활용할 수 없었다. 한국 제조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현장과 접촉하는 '생산 기술팀'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엔지니어의 존재는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핵심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떡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한국 기업들의 해외투자 성공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데에서는 충격 받았습니다(책 229쪽).

삼성전자 IM 사업부의 생산직 노동자는 1분에 6대 혼류생산을 해낸다. 삼성전자 중국공장에서는 동일한 생산설비를 가지고도 같은 생산성을 내지 못한다. (중략) 그래서 중국 공장에서는 전체 공정을 20개의 부분 조립으로 나눠서 분업으로 대응하는 '20인셀'이 일반적이다. (중략) 한편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는 중국보다 생산성이 높아 '6인셀'이 운영된다. (중략) 이때문에 한국 기업이 특별히 선호되는 지역이 되었다. (중략) 한국 제조업은 (해외 투자의 경험을 살려) 국내 공장과 해외 직접투자 공장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기민한 체질'을 갖추게 되었다.


대단합니다. 이제 대기업 노동조합의 연봉 1억 정규직들은 곧 은퇴연령에 접어듭니다. 이 빈 자리에 '광주형 일자리'처럼 연봉 3천만원대의 근로자들이 들어오게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대기업 노조는 이를 강력 저항하면서 '고용세습'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미 무게의 추는 넘어 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한국경제의 상황과 미래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월의 시대』는 빼놓아서는 안될 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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