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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춘욱 Apr 11. 2022

딥밸류 - 한국의 가치투자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자회사 PBR은 10배가 넘는데, 모회사 PBR 0.5배에서 거래!

한국에서 우량 자회사를 보유한 지주회사는 PBR 0.3~0.5배 레벨로, 극단적인 저평가가 진행 중입니다. 참고로 PBR이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입니다. 예를 들어 주당순자산가치(=청산가치)가 1만원인데, 주가가 3천원이라면 이 회사의 PBR은 0.3배에 불과한 셈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우량 지주회사인 LG(003550)을 보더라도, 시가총액이 12조원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손자회사인 LG에너지 솔루션은(373220)은 시가총액이 100조원이 넘습니다. LG가 가지고 있는 지분가치가 시장에서는 전혀 인정 받지 못하는 셈입니다. 네이버 증권에서 보여주는 LG의 PBR은 0.57배이지만, LG에너지 솔루션은 10.75배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미래 성장 가치가 창창하다면, 이 회사 지분을 보유한 LG화학 그리고 LG화학 지분을 보유한 LG의 주가도 오르는 게 당연한데.. 한국에서는 이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주당순자산가치(=청산가치) 아래에서 거래되는 회사들이 이렇게 넘쳐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크게 보아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높은 상속세로 인한, 대주주들의 회사 쪼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의 기사를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346.html


두 번째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성공한적 없다는 것입니다.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투자 성과를 올리는 전략을 소개한 책 "딥밸류"를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 내 저평가주식들이 제 값을 받게 되었는지 잘 나옵니다.

1976년 칼 아이칸(행동주의 펀드의 창시자)은 투자자들에게 배포한 안내서에서 자신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책 32~33쪽).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미국 기업의 청산가치(=순자산가치)가 눈에 띄게 상승했지만, 보통주의 시장 가격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제대로 대응하기만 한다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특별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략)
자산이 많은 기업의 경영진은 자기 회사 주식이 적으며, 회사를 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국내외 자본의 (적대적 M&A) 침략을 물리칠 생각으로 회사 주위에 '만리장성'을 구축해 자신들의 특권을 철저히 보호합니다. (중략) 우리들은 저평가된 주식을 의미 있게 매입한 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당 기업의 운명을 지배해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1) 경영진을 설득해 백기사(경영진에게 우호적인 세력)에게 매각하도록 한다
2) 대리전을 벌인다
3) 공개매수(tender offer, 불특정 다수로부터 주식을 집단적으로 매수하는 일)을 제안한
4) 보유 지분을 회사에 매각한다


이상의 내용은 '아이칸 선언'이라고 알려져 있죠. 간단하게 말해,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대리인(=경영자)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음으로써 돈을 벌자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의 주가가 청산가치(=주당 순자산가치)를 밑도는 것에 대해 벤자민 빌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책 67쪽).

기업이 청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략) 이런 기업들은 '살아남는 것보다 사라지는 편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가 내린 최선의 판단'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시장의 평균 PBR이 1.1배 전후에 불과한데, 상장기업의 대부분은 '사라지는 편이 더 가치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지속될까요?


그 이유는 적대적 M&A가 성공한 적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미도파(대농그룹) M&A가 성공 직전까지 갔지만 갑작스러운 백기사의 등장으로 실패했고, 이번 한진칼에 대한 적대적 M&A도 산업은행의 개입으로 실패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23270#home

https://www.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2011171256332680105258&lcode=00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한국에서는 주가가 청산가치를 밑도는 기업들을 매수하는 '가치투자 전략'이 실패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물론, 이런 회사의 이해 당사자들은 기업가치의 파괴과정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영위합니다. 이른바 터널링에 자회사 이익 몰아주기 등 다양한 편법이 판치죠. 

따라서 이상과 같은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한, 한국에서 가치투자는 대단히 신중한 판단에서 이뤄져야 하며.. 특히 주가의 장기적 저평가 현상을 타개할 촉매(적대적 M&A 시도, 승계, 사정구도의 재편, 주식 테마주로의 편입 등)가 어떤 것이 있는지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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