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식을 한다면

by 인기

요즘 무언가에 홀린듯 이혼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결혼식에 갔던 세 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하는 것 같다고- 나만의 통계를 내는 중인데- 이혼한 사람을 처음 만나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는 아무래도 공통의 화제가 없다보니 “요즘 잘 지내?”라든지 “ 회사 일은 어때?” 라는 둥의 안부로 시작해서, 미혼의 경우 “ 만나는 사람은 있어?” 그리고 기혼의 경우 “ 부인(혹은 남편)과는 잘 지내고?” 라는 질문으로 대화가 나아가고야 만다.

내가 그 사람의 결혼 생활(혹은 연애 생활)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가진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사교적 질문을 하는 것 뿐이다. 당연히 대단한 대답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럴때 “으음…” 하고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 사실 나 얼마 전에 이혼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말하는 쪽도 힘들겠지만 듣는 쪽도 무척 난감하다

내가 이혼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진 건 아니다. 아직 미혼인 내 입장에선, 당사자가 이혼에 이르기까지 어떤 마음고생과 결단을 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이혼에 대해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 뿐이다. 그래서 “사실 나 얼마 전에 이혼했어” 라는 말을 들으면 순간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머리 속에서 급히 단어들을 더듬는다.

결혼이나 출산 같은 소식이라면 “잘 됐네” “ 언제쯤?” 이라는 밝은 호응을 하며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고, 장 례 같은 슬픈 소식이라면 “고생 많았어” 라고 위로를 건네면 된다.

그러나 이혼에 대해선 그런 적당한 말이 없다. 당사자의 사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사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알고 싶지도 않다-어떤 말을 건네야 할 지 전혀 알 수 없다.

“잘 됐네”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해 보이고 “어쩌다가?”라고 묻는 건 상처를 후벼파는 것 같을 뿐더러, 왠지 술 한 잔 먹으며 그 길고 긴 스토리를 다 들어줘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심각한 얼굴로 “안 됐다” 라고 하는 건 더 이상하다. 이혼을 할 만한 사정이 있었으니 이혼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아…그랬구나” 라고 얼버무리고, 당사자도 멋쩍게 웃고 만다. 최근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정확히는 네 번쯤) 내 나름대로는 난처한 상황이다. 만약 미리 이혼을 한 사실을 미리 알고 만난다면, 적당한 대답을 준비하거나 아예 만남을 피할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꼼짝없이 난감한 상황이 데자뷔처럼 반복된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이혼식을 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한다. 신혼부부가 결혼식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것처럼, 이혼을 결심한 부부가 이혼식을 열어 한 시기의 끝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결혼식에 무차별하게 초대 받던 사람들이 이혼식에도 참석해서 “ 음, 그때 결혼식이 2년 전이었던가. 세월 참 빠르군” 하며 작은 감상에 젖을 것이다. 그리고 이혼을 한 저 친구를 다음에 만나면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나름의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상상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헛소리이다.


1. 헤어짐을 앞둔 커플이 이혼식 따위를 하며 서로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2. 설사 이혼식을 하는 커플이 있다고 하더라도, 초대하는 사람의 숫자는 결혼식 때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많은 경우, 나는 초대받지 못할 것이다.


이혼식 상상은 헛소리에 불과하고, 결국 나는 또 이혼한 사람들을 만나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혹시 이혼한 사람을 만났을때 근사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좀 알려주시길. 어쨌든 이혼이 성행하는 시대이니까, 그런 유용한 에티켓 정도는 널리 알려져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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