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도, 친절은 남는다

by 인기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문구다. 보자마자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고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라고 수긍했다. 뜨거운 사랑이 스스로를 불살라 이별의 재가 되었을 때, 마지막까지 타지 않고 남는 건 그 사람이 베풀었던 사소한 친절. 역시 마음을 울리는 말은 간결하고 아름답다.


신랄한 유머감각으로 유명했던 보네거트의 전 연인들은 이 문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 그 사람 참 친절했지”하며 감상에 젖어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도 있었을 것이고, “풋, 네가 그런 말을?”이라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심지어 보네거트의 부인은 남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나한테 친절하게 잘 하라구요” 라며 그 문구를 들먹일지도 모른다. 보네거트는 그럴 때마다 소설에 그 문구를 썼던 것을 조금은 후회했을 것이다.


나는 나뭇가지로 이별의 재들을 휘휘 더듬어본다. 무엇이 지금까지 남아있나 유심히 들여다본다. 어떤 이별엔 여전히 친절이 묵묵히 남아있다. 또 다른 이별은 완전히 소각되어, 친절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 연인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문득 그녀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고 상상해본다. 모임 장소는 안락한 소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낡은 카페가 좋겠다. 나는 카운터에서 드립 커피를 만들고, 등은 쉴새 없이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그녀들은 (아마 다섯명 정도) 이런 데 오기 싫었다는 듯,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며 카페에 들어선다. 곧장 소파에 여기저기 널부러지듯 쓰러진다. 이윽고 대화가 시작된다.


A: 왜 이런데 부른거야

B: 지가 친절했다고 생각했나보지

C: 그 이기적인 성격은 여전하네


그녀들은 금방 친해진다. 나에 대한 험담을 땔감 삼아 그녀들의 대화는 활활 타오른다. “맞아 맞아” 맞장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낄낄거리는 웃음은 끊이질 않는다.

나는 조용히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가끔 그녀들에게 다가가서 커피는 부족하진 않은지, 불편한 건 없는지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그녀들도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져 가끔은 좋은 말을 해주지 않을까. 난 사실 그렇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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