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이별

by 인기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7년 전 사귀었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문장은 ‘잘 지냈어요?’로 시작해서, ‘가끔 안부 묻고 지내요:)’로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중간엔 반가움과 어색함 그리고 아련한 추억이 뒤섞여 있었다.


첨부 파일도 있었다. 무려 7년 전, 내가 그녀에게 썼던 연애 편지 파일들이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첨부파일을 열었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 hwp>


그 속엔 20대의 내가 있었다. 유치하고, 치기 어리고, 허세 가득한 모습이었다. 읽기 부끄러워 몇 번이나 창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문자 그대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그럼에도 좋았다. 20대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사실 난 얼마 전 그녀의 글을 브런치에서 읽었다. 우연히 찾은 건 아니고, 문득 소식이 궁금해 그녀의 정보를 구글링해본 것이다. 너무나 쉽게 그녀의 브런치가 나왔다.


그리고 그곳엔 , 내가 7년 전 쓴 연애 편지에 대한 그녀의 답장이 올라와 있었다. 7년 만에 받은 뒤늦은 답장, 순간순간 떠오르는 옛 추억, 마음을 가로지르는 복잡한 감정들.


나는 그녀의 브런치에 있는 아이디로 이메일을 보냈다. 요지는 내가 7년 전에 썼던 연애 편지 파일을 다시 내게 좀 보내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연애 편지 파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마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 받은 후, 홧김에 모든 걸 지워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그녀에게서 답장이 온 것이다. 그녀는 브런치에 연동된 이메일이 자주 쓰지 않는 것이라 이제야 확인했다며 늦은 답장의 이유를 설명했다. 7년도 기다렸는데 뭐 한달 쯤이야. 그래도 이번엔 빨리 답장을 받은 셈이니 서운하진 않았다. 대신 무척 고마웠다. 그녀는 내 요청대로 7년 전 내가 쓴 연애 편지 파일들을 첨부해 보내주었다.


내가 썼던 옛 연애 편지들 중 그나마 덜 오그라드는 것을 골라 옮겨 적는다. 아마 그녀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기 직전-관계가 한창 삐걱 거릴때- 내가 보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너에게 보내는 편지. hwp>


어제와 오늘의 몇가지 실랑이들



1.


그날 나는 꽤 아팠다. 이른 새벽부터 비를 맞으며 촬영을 하고 들어온 탓인 것 같다. 식은땀이 줄줄 새어 침대를 적시고, 나는 새끼 강아지마냥 덜덜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자 끙끙 거리며 누워만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이렇게 아팠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눈앞은 핑글핑글 돌고, 코에선 기분 나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입은 바짝바짝 마른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보라색, 파란색, 주황색 노란색 온갖 컬러바들이 눈앞을 지나쳐다닌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한다. 너는 받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한다. 너는 받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한다. 너는 받지 않는다.

나는 네가 보고 싶었다.



2.


집. 근처 작은 병원에서 링겔을 맞았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내 몸은 잠잠해졌다. 이른 새벽,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를 탔다.

고개를 들었다. 밤하늘에 슈퍼문이 떠있었다.


크고,

밝고,

특별해보였다.

나는 네가 보고 싶었다.



3.


간신히 월요일의 촬영을 끝냈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상의 끝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양주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 네가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나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을 만큼, 유치한 행동이었다.



4.


나의 세계는 작고, 유치하고, 어둡다. 아직도 어린아이다. 나는 항상 말로는 너의 세계, 너의 시간을 존중해주겠다고 하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항상 내 세계에 네 세계가 맞춰져 있길 바라고 있다. 내 상황, 내 마음, 내 감정을 네가 항상 알아주길 바라는 이룰 수 없는 꿈 속에 살 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몹시도 부끄러웠다. 너와 전화를 끊기 전 너와 나 사이에 흘렀던 십여초간의 침묵이 지워지지 않았다. 너에게 선뜻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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