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유혹 아줄레주와 살아있는 질서 칼사다에 담긴 이야기
리스본 스토리센터와 아우구스타 전망대를 둘러본 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 리스본 동쪽 주택가에 자리한 아줄레주 박물관으로 향했다.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낮은 언덕 위로 이어지는 담벼락, 타일로 꾸민 집들, 이른 햇살에 반짝이는 창문들. 빨래 너머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까지, 화려하지 않지만 따스한 일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버스 안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창밖을 바라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나도 자연스레 그 고요함에 스며들었다. 박물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더욱 한적해졌다. 정류장에서 내려 조용한 골목을 따라 걷자, 오래된 벽돌과 담쟁이덩굴로 덮인 입구가 나타났다. 대기줄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리스보아 카드가 있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아줄레주 박물관은 포르투갈 전통 타일 예술을 전문으로 다룬다. 1958년 개관해 1980년 국립 박물관이 되었으며, 1509년 마누엘 1세의 왕비 도나 레오노르가 세운 수도원을 개조한 것이다. 외관은 소박하지만 내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16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의 내부 장식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완성되었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에서 금을 들여와 풍요를 누리던 시기다. 바닥에는 브라질산 나무가 깔려 있고, 벽면에는 네덜란드산 아줄레주가 정교하게 박혀 있었다.
1834년 수도원 재산이 국유화되면서 수녀원은 문을 닫았다. 마지막 수녀가 사망한 1871년 이후 공공건물로 바뀌었고, 1958년 레오노르 왕비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을 계기로 아줄레주 박물관이 시작되었다.
박물관은 1층에서 3층까지,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아줄레주의 변화를 보여준다. 타일만 전시된 게 아니라 수도원에 원래 있던 그림과 장식, 가구가 그대로 남아 있어 과거 공간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니 차분한 조명이 오래된 벽과 타일 위로 내려앉았다. 시대별로 다른 주제를 담은 타일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꽃무늬, 종교화, 신화 속 인물, 바다 풍경, 도시의 일상이 세심한 선과 색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예배당도 인상적이었다. 천장은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벽 아래쪽은 푸른 아줄레주가 단정하게 둘러져 있었다. 눈부신 황금빛과 차분한 파란색이 만든 대비가 시간의 서로 다른 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예배당에 잠시 앉아 있으니 수도원 시절 이 공간에 흘렀을 기도와 침묵이 느껴졌다.
박물관 뒤편 마당에서는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타일 하나하나를 손으로 닦고 이어 붙이는 과정을 보며, 이 예술이 얼마나 긴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색이 바래거나 금이 간 흔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자국들이 작품에 깊이를 더했다.
박물관 중앙에는 '그란데 파노라마 오브 리스본'이 있다. 23미터 길이의 거대한 타일 벽화로, 1755년 대지진 이전 리스본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규모였다.
박물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아줄레주는 과거의 유물만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이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한 조각이기도 하다. 리스본 거리와 오래된 골목, 건물 외벽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아줄레주를 보면, 이 예술이 지금도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있음을 안다.
포르투에서도 경험했지만 길을 걷다 보면 소박한 골목의 작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그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겉모습과 달리 화려한 타일로 꾸며진 내부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아줄레주는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가, 문득 조용히 시선을 붙드는 예술이다.
리스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자꾸 발밑을 내려다보게 된다. 보도에 펼쳐진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들. 섬세한 자수를 놓은 듯한 이 바닥길이 칼사다 포르투게자(Calçada Portuguesa), 포르투갈식 포장길이다. 처음엔 그냥 예쁜 무늬가 깔린 거리라고 생각했다.
리스본의 중심가 헤스타우라도르스 광장 부근을 걷다가 눈에 띈 조형물에 대하여 앞에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두 남자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돌을 하나씩 놓는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둔 것이다. 실제 칼사다를 만드는 장인(칼사데이루)들의 모습이었다. 수십 년간 이 도시 보도를 만들어온 사람들을 기념한 동상이었다. 그 순간 늘 밟고 지나던 바닥길이 다르게 보였다. 길 하나에도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구나.
칼사다는 단순한 포장길이 아니다. 전통과 기술, 예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담겨 있다. 포르투갈은 물론 브라질, 마카오, 모잠비크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돌로 길을 포장하는 방식은 로마 시대부터 있었지만, 지금 같은 칼사다는 19세기 중반 이후 포르투갈에서 발달했다.
호시우 광장의 칼사다를 바라보다 문득 마카오의 세나도 광장이 떠올랐다. 검은 자갈과 흰 자갈이 물결처럼 얽힌 바닥이 햇살에 반짝이며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 위를 걷던 발의 감촉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돌과 돌 사이의 미묘한 굴곡, 한낮의 열기에 달아오른 표면의 온기까지도.
멀리 떨어진 두 도시가 그 순간 한 장의 기억으로 겹쳐졌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던 그 도시에서, 칼사다는 말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인의 손길로 하나하나 박힌 돌들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시간의 지층이었다. 햇살 아래 반짝이던 그 길을 걷던 순간, 그날의 바람, 광장을 가로지르던 비둘기 떼, 멀리서 들려오던 포르투갈어의 선율, 함께한 사람의 웃음—모든 것이 물결무늬 위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리스본 한가운데서 마카오의 오후를 다시 밟고 있었다. 발밑의 돌은 두 도시를 잇는 하나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빛이 조금 기울자, 그 기억도 석양빛과 함께 잔잔히 흩어졌다.
놀라운 건 이 정교한 작업이 지금도 손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기계화된 21세기에도 포르투갈 길바닥은 사람 손과 망치로 만들어진다. 숙련된 장인들이 무릎을 꿇고 작은 망치로 돌을 하나씩 깨고 다듬는다. 그리고 정해진 디자인대로 바닥에 배치해 간다. 주로 석회석을 쓰며, 흰색, 검은색, 회색, 연분홍색 등 색깔과 질감이 다양하다. 돌 윗면은 디자인에 따라 정사각형, 직사각형, 삼각형, 육각형 등으로 다듬는다.
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다음 돌을 하나씩 심는다. 틈새는 고운 모래로 채우고, 물을 뿌려 흙을 단단하게 만든다. 무거운 나무망치로 돌을 눌러서 고정시킨 후, 빗자루로 돌 위 흙을 깨끗이 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짜 완성은 그다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돌이 자연스럽게 닳고, 햇빛을 받아 매끄럽게 윤이 나기 시작한다.
칼사다는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이자,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문화였다. 디자인은 놀라울 만큼 다양했다. 흰 돌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길이 있는가 하면, 흑백의 대비로 물결무늬를 그려내거나 바둑판무늬를 정교하게 짜 맞춘 곳도 있었다. 사선이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길, 기하학적 무늬가 끝없이 반복되는 광장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원 입구에는 설립 연도가 단정하게 새겨져 있고, 상점 앞에는 가게 이름이 정성스럽게 박혀 있었다. 도시의 문장이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장면을 칼사다 패턴으로 표현한 곳도 있었다. 길바닥 하나하나에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 셈이다.
처음 칼사다 위에 발을 디뎠을 때는 반들반들한 표면 때문에 미끄러울까 봐 걱정했다. 특히 비라도 내리면 어떻게 되나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칼사다는 단단하고 안정적이었다. 비가 온 후에도 신발이 바닥에 잘 붙는 느낌이었다. 돌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꽉 지키고 있어서, 마치 도시가 우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 같았다. 함께 걷던 아내와 처제도 처음엔 조심조심 발을 디뎠다. 미끄러질까 봐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둘은 어느새 신기해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발밑의 무늬를 따라가고, 멀리 이어진 패턴을 찾아보며 천천히 칼사다 위를 걸었다. 그 발걸음에는 익숙해진 여유와 낯선 풍경에 점점 빠져드는 여행자의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길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칼사다는 손이 많이 간다. 돌 하나하나를 사람 손으로 박아야 하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하려면 숙련된 장인이 필요하다.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리스본 같은 큰 도시에서는 이 방식을 계속 유지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일부 골목에서는 공사 후에 더 저렴하고 간단한 보도블록을 깔기도 한다. 효율과 경제성을 따지면 당연한 선택이다. 편리함과 전통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은 칼사다가 도시의 개성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얼굴이자 손때 묻은 예술이니까.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 그 도시가 어떤 곳인지 말해주는 언어인 셈이다. 그래서 칼사다는 여전히 거리 곳곳에서 살아 숨 쉬며 그 나라만의 따뜻함과 멋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칼사다는 그냥 돌로 만든 길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을 품고, 시간과 함께 걸어가는 이야기다. 누군가 사랑을 고백했던 광장,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 노인이 매일 산책하던 공원—그 모든 순간이 칼사다 위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포르투갈 길바닥을 본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 땅 아래서, 누군가의 손길과 시간이 조용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