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의 보물창고
두오모 성당 뒤편, 그러니까 우리 호텔에서 나와서 왼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은 우리가 두오모 성당을 즐기는 세 가지 종류의 패키지 중 가장 간단한 '기베르티 패스'에도 포함되어 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과 조토의 종탑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은 포기했다. 꽤 부담스러운 계단을 일행들이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우선 입장권을 구입해도 긴 대기줄로 인해 전체 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피렌체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결정은 모임에서 추천한 일정을 참고하되, '따로 또 같이'의 콘셉트로 커플들의 자유에 맡기기로 했었다.
오페라 박물관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미술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립된 부속 박물관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피렌체 대성당의 파사드를 그대로 옮겨 놓고, 원본 석상들을 본래의 위치대로 배치해 둔 〈살로네 델 파라디소(Salone del Paradiso)〉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로렌초 기베르티의 산 조반니 세례당 대문인 일명 〈천국의 문〉이 전시되어 있었다.
천국의 문, 다시 마주하다
김 여사가 시에나 호텔에서 강의했던 작품이 바로 이 '천국의 문'이었다. 진품을 직접 감상하며 다시 한번 김 여사의 현장 보충강의가 이어졌는데, 마치 가이드 투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1401년 세례당 출입문 공모전은 피렌체 예술계의 뜨거운 이슈였다. 공모전에 참가한 조각가들은 '이삭의 희생'이라는 구약성경을 주제로 샘플 패널 하나를 제출해야 했다. 결선에 오른 조각가는 로렌초 기베르티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다. 결국 깊이감이 있으면서 많은 내용을 담은 기베르티의 조각이 당선되었다.
시에나에서 공부했던 10개 패널의 이야기들—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에서, 요셉 이야기, 모세와 십계명, 여호수아와 여리고 성,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과 시바 여왕—이 실제 작품 앞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기베르티가 27년에 걸쳐 완성한 이 문은, 미켈란젤로가 보고 "천국의 문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라고 극찬했다는 바로 그 작품이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청동 패널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김 여사의 설명을 다시 떠올렸다. 사전에 공부한 덕분에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이해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여행 전 준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찬란한 슬픔
이 밖의 소장품으로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무덤에 설치하기 위해 제작했으나 미완성으로 남은 〈피에타〉상과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상이 있었다.
1966년, 피렌체에서 발생한 큰 홍수로 아르노강이 범람하면서 도심의 성당과 미술관의 작품들이 진흙 더미에 뒤덮였을 때,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는 반드시 구제해야 할 최우선순위 작품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 위대한 도나텔로의 작품을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마사초의 회화와 더불어 조각 분야에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도나텔로는, 산 조반니 세례당을 위해 막달라 마리아를 조각했다.
예수의 여제자이자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는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나 예수가 매장되는 장면에서 예수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나텔로는 특이하게도 실물 크기의 독립적인 조각상으로 그녀를 표현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과는 달랐다. 도나텔로는 그녀를 참회하는 고행자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연민이 밀려왔다. 외면하고 싶지 않은, 찬란한 슬픔의 감정이란 이런 것일까? 아주 기이하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한때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도가 죽은 후 성지를 떠나 배를 타고 항해해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근처에 상륙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곳의 황야로 들어가 남은 나날 동안 은둔자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성자들의 대부분은 개성이 드러나지 않은 완벽한 모습으로 이상화되었지만, 이 작품은 매우 사실적으로 초췌한 노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성경 속 이야기 그대로 황야에서 홀로 살았던 노파의 모습을 잘 묘사했다.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앙상한 몸을 가리고, 깊게 파인 눈과 주름진 얼굴, 그리고 기도하는 듯 모은 손.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나무 조각이었다. 확실히 인간적이었다.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피에타
또 하나의 명작으로 꼽히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피에타〉, 일명 〈반디니 피에타〉다. 이 작품은 1534년, 미켈란젤로가 피렌체를 떠나 로마에 정착한 후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년에 접어든 예술가는 시대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위기와 고통을 이 피에타에 담아냈다. 그는 죽음과 그 죽음 이후 맞이할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조각에 고스란히 새겼다고 해석된다.
특히 팔꿈치, 가슴, 예수의 어깨, 그리고 마리아의 손에 남아 있는 균열과 파열된 흔적들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주저하다가 스스로 망치로 내리쳐 파손한 것이라는데 매우 안타까웠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제자에 의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작품이지만, 미완성된 상태마저도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작품은 반드시 완벽하게 마무리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작품이 다시금 증명해 주는 듯했다. 미켈란젤로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신앙에 대한 갈망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완성된 작품보다 오히려 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옥상에서 마주한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의 3층으로 올라가면 옥상이 펼쳐지는데, 바로 그곳에서 두오모 성당의 돔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이곳은 아는 사람들만 찾는 숨은 사진 명소다. 굳이 비싼 음료값을 지불하고 루프탑 카페에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라면 충분히 두오모 돔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어쩌면 피렌체 어디에서도 여기만큼 가까이에서 돔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브루넬레스키의 걸작이 눈앞에 있었다. 600년 전 그가 로마의 판테온을 연구하며 구상했던 혁신적인 팔각형 돔. 목재 지지구조 없이 완성한 건축의 기적. 그것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피렌체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다.
잠시 그 감동을 가슴에 품은 채, 다음 목적지인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드디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만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