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피렌체 입성, 시간의 문을 열다

by 트릴로그 trilogue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피렌체였다. 지금까지 거쳐온 토스카나의 소도시들도 나름대로 인상적이었고 매력적이었지만, 결국 피렌체에 오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600여 년 전, 인류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여전히 르네상스의 흔적이 도처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도시, 그렇게도 와 보고 싶었던 피렌체가 이제 30분 거리에 있었다. 과거 천재들이 농축된 시간 속에서 활동하던 시절로 돌아가, 그들의 숨결을 직접 느껴 볼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꽃의 도시’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 ‘Fiorenza’에서 유래한 피렌체. 이 도시를 상징하는 문장 역시 꽃이다. 흔히 ‘피렌체의 백합’이라 불리지만, 이 문장은 사실 붉은 붓꽃을 형상화한 것이다. 피렌체 공화정 시절부터 도시의 상징으로 사용된 이 문장은 깃발에도 새겨졌으며, 오늘날에도 피렌체의 상징으로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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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곳곳에서 유독 비슷한 색조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란빛이 감도는 외벽, 붉은 지붕, 짙은 녹색의 덧창까지, 대부분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듯 비슷한 색상을 띠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 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건물 외벽을 흙색으로 칠하도록 권장하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은 보수할 때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피렌체의 건축물들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색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덧창이 짙은 녹색을 띠는 것은, 과거 해충을 피하고자 비소를 섞은 물감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피렌체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역사 지구는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건물 개조나 변형이 엄격히 제한된다. 비록 짧은 체류 기간이지만 피렌체만의 독특한 매력을 충분히 느껴보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피렌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렜다.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두 번이나 보고, 관련 유튜브 영상과 관련 책자, 그리고 블로그 글까지 보았다. 어쩌면 이미 다녀온 적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여행지였고, 오고 싶어 했고 기대가 컸던 만큼 혹시 오히려 실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남자 주인공 준세이는 피렌체에서 미술품을 복원하며, 그것이야말로 죽어 가는 생명을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복원하는 동안, 죽은 화가의 영혼과 마주하며 자신의 영혼까지 정화되는 듯한 신성한 기분을 느꼈던 것일까? 준세이와 아오이의 사랑은 냉정과 열정 사이를 넘나들며 진행되었고, 영화의 줄거리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피렌체의 아름다운 풍경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었다. 마치 시간이 과거에 멈춰버린 있는 듯한 도시의 모습 말이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피렌체를 이야기할 때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피렌체, 그리고 메디치 가문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메디치 가문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귀족 가문으로, 은행업과 상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르네상스 예술과 문화의 후원자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코시모 데 메디치는 메디치 은행을 설립해 가문의 재산을 크게 불렸을 뿐만 아니라, 피렌체 공화국의 실권자로서 정치적인 입지를 다졌다.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위대한 로렌초’라는 칭호로 불리며, 르네상스 예술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았다.


17세기 후반, 메디치 가문은 점차 쇠퇴했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피렌체와 전 세계에 남아 있다. 특히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는 가문의 예술품 컬렉션이 피렌체 시외로 반출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시에 기증하였고, 이는 우피치 미술관의 기초가 되었다.


ZTL 규제가 엄격한 피렌체 도심으로 진입하며 미켈란젤로 광장 부근에 다다르자, 저 멀리 두오모의 거대한 돔이 마치 우리의 방문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위엄을 자아냈다.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호텔과 제휴된 주차장(Garage Michelangelo)을 찾아갔다. 주차장 주변의 골목길은 일방통행길인데, 캐리어를 끌며 이동하는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걷는 비좁은 인도마저 좁아 보였다. 결국 일부 보행자들은 차도로 내려오기도 했으며, 주차된 차량들이 길가를 가득 메운 탓에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길은 비좁고 복잡했다.


주차장 모습

드디어 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입구는 예상보다 훨씬 좁았고, 차도에서 직각으로 꺾어 진입해야 하는 고난도의 운전 스킬이 요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케 무사히 주차를 마친 후, 캐리어를 끌며 5분 거리에 있는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도 조금 전에 스쳐 지나간 사람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호텔로 향했다.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이탈리아 여행 중 무조건 반드시 방문해야 한 간다는 피렌체의 두오모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성지로 유명하다. 피렌체 대성당은 피사와 시에나의 새로 지어진 성당들에 자극을 받아, 900년의 역사를 가진 된 산타 레파라타 성당 터 위에 건설되었다.

산타 레파라타 성당은 너무 오래되어 점점 무너지고 있었고, 인구가 급증하던 피렌체의 위상에 비해 너무 작았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밀라노 대성당과 견줄 만한 웅장한 성당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성당건설이 계획되었으며,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설계했다. 그는 산타 크로체 성당과 베키오 궁전을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했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140여 년간 지속되었으며, 여러 세대에 걸친 노력이 필요했다. 아르놀포가 1302년에 사망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1349년에 공사는 재개되었다. 대성당의 공사는 1349년 대성당 공사가 재개된 이후 쿠폴라(돔)만 남겨 둔 상태에서 성당본당(네이브 nave)은 1380년에 완성되었다. (네이브 nave: 교회당 건축에서, 좌우의 측량 사이에 끼인 중심부. 건물 내에서 가장 넓은 부분이며 일반적으로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쓰임)


눈앞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했다. 그는 두오모 돔 설계공모에서 기베르티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당선되었지만, 건설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1420년에 시작된 돔 공사는 1436년에 이르러서야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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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피렌체 (2).jpg 왼쪽이 두오모를 설계한 캄비오, 오른쪽이 돔을 설계한 부르넬레스키

이 돔은 역사상 최초의 팔각형 돔으로, 기존의 원형 돔과는 다른 혁신적인 구조였다. 특히, 두오모 돔은 로마의 판테오과 달리 목재 지지구조 없이 완성된 점에서 건축적 위업으로 평가받는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인상적인 건축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재 돔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3일 동안 머무를 호텔은 몇 년 전 김 여사가 가족들과 피렌체에 왔을 때, 위치가 너무 좋아 미리 찜해 두었던 호텔이다. 최적의 위치 덕분에 건물 자체와 시설, 그리고 비교적 비싼 숙박비도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호텔 방에서도 유리창을 통해 두오모를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호텔문을 열고 나서면 조토의 종탑과 산조반니 세례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체크인을 마친 뒤 좁디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방으로 올가서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이후 두오모 성당을 잠깐 둘러 들어가 본 뒤, 두오모성당의 부속 건물인 오페라 박물관(Museo dell’Opera del Duomo)을 거쳐, 5시로 예약한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Accademia di Firenze)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곳에서 드디어 다비드상 실물을 영접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 날씨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한국에서도 이곳의 주간 날씨 예보를 거의 매일 확인하며 비 소식에 걱정했었는데, 피렌체에 머무는 기간에 비 예보가 있어 걱정했었다. 막상 이곳에 와 보니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조금씩 변하기는 해도 지금까지의 토스카나 날씨는 우리에게 무척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슬슬 신경 쓰였다. 비 오는 피렌체도 나름 운치 있겠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내리는 비는 다소 불편할 것 같다. 하지만 내일 일은 내일 가서 걱정하면 되니까, 일단 오늘은 피렌체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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