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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Apr 24. 2016

치앙마이 - 새벽에 어슬렁대기

홍씨의 세그림. 7화

 목적없는 배회, 방랑, 혹은 방황 따위의 것들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그 시간들이 꼭 어떤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지만, 그래도 항상 고민하게 되는 그런 질문이다.


 치앙마이에서 새벽의 길거리를 배회하며, 그 질문에 대해 너무나 뻔함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이면서도 맛깔나는, 그런 답을 다시 한번 유추해본다.


 새벽 4시,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지만, 눈이 잘 떠지질 않는다. 일이십분 밍기적대고 있는데, 밖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린다. 뭔일이든 있을 것 같은 소리다.


 '엇! 그래, 일어나야지!'


 며칠 전, 혼자 노점에서 저녁을 먹다가 제리라는 미국 아저씨를 만났는데, 그에게서 새벽 시장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새벽엔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을 위한 장이 선단다. 실제로 가보니 과일, 채소, 고기 등 장사를 위한 식료품들이 많다. 금새 시장을 한바퀴 휘 둘러본다.


 다보고 나니, 또 뭘 할까 싶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당연하지만 새벽엔 참 사람이 없다. 그대신 동물들이 많다. 쥐들이 살금살금 뛰어다니고, 낮에는 널부러져 있던 개들도 이시간에는 팔팔하다. 몇몇 놈에게 시장에서 산 밥을 좀 나눠줬는데, 그 이후로 졸졸 따라온다. 나에겐 더이상 밥이 없음을 몇차례의 손짓으로 알려준 후에야 놈들은 떠났다.


 치앙마이 구시가지 곳곳에 위치한 절들도 모두 잠들었다. 여섯시부터 개방한다는 안내가 눈에 띈다. 어디선가 태국의 스님들도 탁발(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을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아, 기다려 보기로 한다.


 문을 연 까페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여섯시 즈음 다시 배회를 시작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스님들이 탁발을 하러 다니고 있다. 몇몇 주민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고, 그것들을 받은 스님들은 그들과 함께 기도 혹은 예불같은 것을 올린다.


 내친김에 조금 더 걸었다. 강 위를 무리지어 날으는 제비때도 보이고, 인력거를 끄는 분들과 집앞을 청소하는 주민들도 종종 있다. 마구잡이로 걷다보니 잠시 길을 잃었는데, 안전한 동네이기에 큰 걱정 없이 계속 걷는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직진할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가보다. 전선을 타고 다니는 청솔모와 여러 새들, 가로등 빛에 모여든 날벌레들과 그들을 잡으러 모여든 도마뱀들. 조용한 모양새로 쉬는 듯한 옛 건물들과 새벽에도 화려함과 신비로움을 잃지 않은 사원들...


 '아, 이게 바로 치앙마이구나...'


 말 그대로였다. 약 세시간의 배회를 통해, 평소에는 잘 보지 못했던 치앙마이의 모습을 보았다. 이 모습들은 비록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있겠지만, 치앙마이에 대한 분위기만은 내 기억에 꾸준히 남겨질 것이다.


 여행을 통해 뭔가 큰 것을 얻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여태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다른 면을 조금이나마 엿보고 '이런 것도 있구나', 혹은 '이곳에 내가 살아가는 곳이구나'하고 한번쯤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

치앙마이 도이수텝 정상의 사원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현재)


새벽의 이름모를 사원
길거리 개가 문앞을 지킨다.
부서졌지만 여전히 제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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