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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May 29. 2016

양곤 - 이런저런 일들

홍씨의 세그림. 12화

 양곤에서 있었던 일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1. 폭우


 우기가 시작되려는 걸까? 이삼일 전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그리고 오늘 드이어 비에 의한 사건이 터졌다.


 한참을 방에서 빈둥대다가 오후가 되어 까익도우 궁전(가루다 형상의 뱃머리가 달린 배 두척과 그 위에 올려진 궁전)을 구경하러 깐도지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내렸다 말았다 하는 비를 피해가며 공원을 걷는데, 준비한 우산이 두명이 쓰기엔 너무 작아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알콩달콩 우산에 숨어 다녀보지만, 점점 빗줄기가 굵어진다. 결국 한 식당의 지붕 아래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곧 시작된 엄청난 폭우. 이런 무거운 비는 오랜시간 지속될 수 없다 여겼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계속되는 비에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후다닥 호수 건너의 궁전을 구경한 후 택시를 잡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아슬아슬하니 나름 재미도 있다.


 택시를 타기 위해 우산을 접는 순간, 몸이 반은 젖어버렸다. 미씽과 나는 '엄청난 비'라고 감탄하며, 그래도 다행히 택시를 탔으니 이것으로 우리의 비 피하기 여정은 끝이 났다고 안심했다. 차안에서 느긋하게 비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미씽 : "여행은 날씨 운도 좋아야 하는 것 같아. 너무 더우면 더워서 힘들고,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없잖아."

 홍 :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런 날씨들을 피하거나 그런것에 지쳐가면서, 하나의 추억을 쌓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의 이 오만한 발언은 곧 무서운 현실로 다가왔다. 숙소 앞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렸는데 길바닥에 작은 홍수가 났다. 내린 곳에서 인도까지 올라가는 길에 엄청나게 물이 차올랐다. 문제는 이곳의 길이 깨끗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쥐의 사체도 보았고, 쓰레기가 종종 버려져 있으며, 신기하게도 이런 도시의 길가에 소를 묶어둔 집이 있어 그들의 똥도 있었다. 전선 위에 비둘기들은 어찌나 많은지, 그들의 변의 양도 아마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들은 이미 물에 쓸려 내려갔겠지만, 미씽과 나의 감성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으아~! 으아아아아아아아~."


 미씽은 말그대로 울부짖었다(울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울부짖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한명만 저 물에 빠지는 것이다. 깊어봤자 허벅지까지만 빠지리라.


 "엎혀! 어서 숙소로 가자!"


 나는 미씽을 업은 채 허겁지겁 강(?)을 건넜고, 내 엉덩이는 이 찝찝한 물에 다 젖어버렸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희안하다는 듯 쳐다보는 여유로운 현지인들, 그리고 그들 사이로 물을 피해 달아나는 새처럼 큰 바퀴벌레 한마리... 녀석은 우리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듯했다. 힘든 경험이었다.


 돌아보면 어릴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험이 아주 가끔 있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분명 물에서 첨벙첨벙 놀기까지 했었을텐데, 그 사이 무엇이 바뀐걸까? 왜 이렇게 약해진 것일까? 아마 문명 그리고 발전이 나를 이렇게 나약하게 만든게 아닐까 싶다.


 현지인들의 여유로웠던 그 표정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갸아악~!


2. 친절한 택시기사


 양곤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우리를 태우고 막 출발하려는 택시를 한 할머니께서 불러 세우신다. 택시 기사는 할머니와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 보이셔서 같이 좀 갈게요."


 연세가 많아 모시고 가겠다는 그의 이유에 반신반의하며 우리는 동의했다. 기분이 나빴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택시기사로서 당연하겠거니 했다.


 삼십분쯤 달려 할머니의 댁에 먼저 도착했다. 집 앞에 택시가 서니 손녀로 보이는 아이 둘이 마중을 나왔다. 그들은 한참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전혀 모르기에, 그냥 택시기사와 아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미얀마에서 종종 이런 유사한 광경을 보는 것 같다. 전혀 대화를 나눌 일이 없어보이는 사람들끼리 짧지않은 대화를 나눈다. 생소한 풍경이다.

 곧 할머니가 주섬주섬 돈을 꺼내서 내시고는 손녀들과 댁으로 들어가셨다. 기사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알고보니 연세가 85세시란다. 자신이 할머니께 돈은 안주셔도 된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내시겠다고 답을 하셨고, 내시고 싶은 만큼만 주시라고 했단다.


 나는 아까의 의심 아닌 의심이 조금 미안했다. 또한 미얀마인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목격한 것만 같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공항에 가기 전까지 그와 몇마디 나눴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미얀마의 더위에 지쳐 이제 그곳을 떠나려던 내게 이 사소한 사건은 뭔가 기분좋은 마무리가 되어주었다.

 앞으로 미얀마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변할지는 전혀 모르지만, 왠지 이런 훈훈한 모습들만은 이곳에 계속해서 남아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양곤... 쓸만한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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