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의 세그림. 14화
개인적으로 메리설산의 이름은 뭔가 귀엽다. 어린 양의 이름 같다고나 할까? 히말라야 산맥의 한자락이라는데, 꽤나 높고 그 꼭대기가 항상 눈에 덮혀있다. 하얀 정상의 색감은 메리라는 이름과 더욱 어울린다.
반면 산의 모양새는 꽤나 멋드러지다. 눈덮힌 여러 봉우리가 새파란 하늘아래 나란히 늘어섰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구름에 가렸다가도 햇볕에 노출되기를 반복하며, 약간은 신비로운 느낌을 풍긴다. 또한 멀리서 바라봐도 보이는 거대한 빙하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항상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페이라이스(사찰, 혹은 사찰 부근 마을의 이름), 우리는 그 곳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전 날, 산 위의 빙하를 보기 위해 짧지 않은 거리를 걸은지라, 하루는 그냥 동네에서 쉬기로 했다.
길을 걷는데 도로를 따라 어슬렁대는 당나귀 두마리가 보인다. 여태까지 산에서 본 동물들(예를 들자면 산양이나 야크, 말 같은 녀석들)은 대체로 깨끗해 보였는데, 이 두녀석은 좀 덜 그렇다. 그래서 처음엔 누가 헛간 같은 곳에서 기르는 녀석들인가 했다. 그러나 목이나 몸 그 어디에도 방울과 같은 사람의 흔적이 없다.
"산에서 내려왔나봐."
"얘네들 엄청 순해보인다. 엄청 귀엽네."
말보다는 많이 작은, 큰 개보다는 조금 큰 정도의 녀석들은, 알고 있던 당나귀의 모습보다 털이 복실복실하다. 둘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서로의 엉덩이도 밀치고, 길바닥 냄새도 맡아가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내가 가서 앞을 '턱'하고 막아서니, 무슨 생각인지 가만~히 있는다. 그리곤 바로 멍을 때린다. 그러다가 비켜주면 다시 길을 가는 식이다.
이녀석들은 아마도 천성적 멍둥이 들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보며 걷는데, 그럴때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멍하니 걷는 모양새다. 당나귀 인형 둘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색 메리설산과 갈색 당나귀들의 모습이 그냥 참 어울린다. 그 둘의 평화로운 모습이 닮았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를 맛있게 마시던 미씽이 어디서 들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운남성 커피가 사실은 꽤나 유명하대.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아직 그렇게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인기가 그 이름값에 못 미친대. 아마 커피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면 난리가 날거래."
어떤 난리가 나게될까...? 막 사람들이 몰려와서 싹쓸이 해갈까? 그러다가 운남성 커피가 부족해지고, 다른 지역과 다른 나라 커피까지 싹쓸이 해버리게 되고, 세상엔 커피가 모자라 그 값이 폭등하게 되어 커피폭풍이 2년 하고도 33일간 몰아쳐서 사람들이 커피를 끊게 되는걸까? 나름 괜찮은 결말이다, 나는 어딘가에 중독된다는 사실이 싫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걷는데 아까의 그 당나귀들이 왠 인적없는 공사터에 들어가 멍하니 서있다. 대체 저긴 왜 들어갔고 지금은 뭘하는 걸까?
녀석들을 뒤로하고 조금 더 길을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푹 침대에 널부러졌다. 하릴없는 이 하루 동안 내 머리속엔 이런 궁금증이 머문다. 이런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지. 영화관도 쇼핑몰도 없지만, 하루 종일 저 멋드러진 산을 바라볼 수 있고, 당나귀들이 거리낌 없이 마을로 내려오며, 밤엔 은하수와 별들을 무심코 바라볼 수 있는 마을...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 호도협 트레킹 -> 샹그릴라 -> 메리설산(페이라이스) -> 리장 -> 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