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의 세그림. 17화
몽골 투어 도중 들린 유황온천. 9일간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 지쳤던 우리는 잠시 투어에서 벗어나 쉬기로 했다. 계란 삶은 향(?)을 풍기는 온천에서 몸을 녹이며, 날이 저물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척박하기만 할 것 같던 이곳에서 이런 노천 온천이라니... 이게 웬 떡인가 싶다. 하늘에 구름이 껴 물 밖은 제법 선선하다. 피로가 술술 풀려나간다. 샤워를 하고 게르(몽골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집 혹은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곳 직원에게 난로에 불을 지펴달라고 부탁했다.
난로 속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을 '후우우' 불어가며, 지난 며칠 간 내가 본 몽골을 곱씹어본다. 뭔가 특별히 느끼거나 하진 못했다. 그냥 아주 멋지고 자유로운 곳이라는 생각만 계속해서 드는 곳이다. 대체 뭐가 그렇게 멋지고 자유로웠던 걸까?
1. 말
곳곳에서 무리지어 다니는 말을 볼 수 있다. 몽골에는 울타리가 없다. 그덕에 이 말들도 어디든 가는 것 같다. 물론 그들에게도 주인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롭지 않아 보이진 않는다.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쉬고 싶은 곳에서 쉬며 풀을 뜯고, 가끔은 투다닥 달리기도 한다. 갈기가 휘날리고 온몸의 근육이 꿈틀대는 그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때론 등이 가려운지 강아지처럼 바닥을 뒹굴기도 한다. 한번은 산책을 하다가 야생마로 보이는 녀석들의 무리 곁을 지나가는데, 그들 모두가 우리쪽으로 일제히 바라보며 한시도 눈을때지 않는다. 그들의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를 밀어내려는지 조금씩 무리지어 다가오는데, 확 덮쳐오면 어쩌나 슬그머니 겁이 난다. 말들도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2. 양, 염소
많게는 수백마리씩 무리지어 다닌다. 가끔은 양과 염소가 같이 있기도 하고, 어쩔땐 따로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다. 쨋든 염소는 멋진 뿔을 가지고 있다. 어떤 녀석들이건 무리에 새끼들이 함께 있는데, 뛰는 모습이 강아지 같고 매우 귀여워 달려가 잡고 싶어 진다. 다만, 녀석들은 방구를 많이 뀐다. 양이나 염소 무리가 지나갈때 옆에 있으면 심심치 않게 "뿍! 뿍!"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온천 주변에서는 캠프 울타리 안에 갇혀 무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울고 있는 새끼 염소를 보았다. 그런데 곧 한 아이가 말을 타고 나타나더니(초등학생쯤 되어보이는데!), 요리조리 프로처럼 움직여 녀석을 울타리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새끼를 잡아채 들어올려 울타리 밖으로 넘겨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엄지를 척 들어올렸고, 아이는 약간은 쑥스럽게 씩 웃어보였다. 일부 지역엔 야생 염소도 살고 있다.
3. 낙타
멀리서 보면 거북이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천천히, 그러나 은근히 빠르게 걸어간다. 그리고 낙타들의 걸음은 상당히 우아하다는 느낌이다. 부드럽게 다리를 들어 사부작 땅에 내려 놓는데, 왠지 모래에 빠지기 싫어 그런 걸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낙타의 가장 큰 특징인 혹은 아주 앙증맞다. 걸을때마다 그들의 등에 달린 두개의 혹이 탱글탱글 흔들린다. 한번 등에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로 털도 보드랍고 혹은 역시나 말랑말랑하다.
4. 소, 야크
야크는 털이 긴 소같다. 모두들 그냥 풀을 뜯고 있다. 분명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잠시 후 구경을 가보면,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아마 생각보다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가끔은 차도를 점거하고 있어 옆으로 지나쳐야할 때도 있다. 느긋한 성격들이다.
5. 솔개
매인지 솔개인지, 아니면 그게 그거인지 모르겠다. 쨋든 하늘을 떠도는 녀석들을 의외로 자주 보게 되는데, 한번은 사냥을 하는 장면도 목격하였다. 참새 같은 작은 새를 잡으려고 위아래로 휙휙 날으는데, 까마귀 두마리가 녀석을 방해한다. 그걸 보고 솔개가 사냥하는 것이 참새가 아닌 까마귀 새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실은 알 수 없다. 잠시 후 녀석은 까마귀들이 성가신지 사냥에 실패한채 떠나갔다.
6. 그외 동물들
솔개가 좋아한다는 다람쥐를 닮은 작은 녀석들(타라바가)가 굴을 파고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대부분의 게르에는 개가 함께 살아가고 있고 간혹 고양이도 있는데, 어디들을 그렇게 쏘다니는지 있다 없다 한다. 그래도 먹이를 주면 좋아하는 것은 어디든 똑같다. 작은 도마뱀도 아주 많다. 또한 내가 보지 못한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늑대, 삵, 야생 낙타, 고비 곰, 순록 등이 몽골에 살고 있다. 일부 지역엔 파리도 아주 많아 우리를 꽤나 성가시게 했다.
7. 초원
정말 드넓은 초원이 어디로든 이어진다. 해질무렵 언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그 풍경이 마치 '풀빛을 띈 바다'같았다. 초원 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그게 왜 그리도 매력적인지 모른다. 초원 위를 한참 달리다 보면 무리지은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고, 드문드문 몽골사람들이 살아가는 게르도 보인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적절하고 어울린다.
8. 사막
고비 사막이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사막하면 모래 사구만을 떠올리겠지만, 그런 지역은 일부다. 모래와 작은 돌들이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 여기저기엔 작은 풀들도 자라고 있어, 일부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주는 듯 하다. 간혹 한쪽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고, 다른쪽에선 해가 쨍쨍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의외로 황홀한 광경이다.
9. 일출, 일몰
정말 어디서 보든 그림이다. 아니, 그림 그 이상이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들, 태양에서 뻗어나온 황금빛 기운들, 자주빛으로 물든 구름들. 매일매일 하염없이 볼 수 있다. 사실, 그런 것 말고는 할게 없기도 하다.
10. 별
총총총총총! 슈우욱! 뭐 이렇다. 떠들고 놀다보면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밖으로 나가보면 "와~!"하는 탄성을 절로 내지르게 된다. 우주에 와있다는 느낌. 우리 일행 중 아는 것도 많고 알려주는 것도 좋아하는 분이 계셔서 밤마다 밖에나가 별자리에 대해 배웠다. 몇몇은 밖에 침낭을 깔고 자는 것을 시도했는데, 새벽에는 조금 추웠는지 다들 게르로 돌아왔다. 쨋든 은하수도 별똥별도 몽골에선 희귀하지 않다. 덧붙이자면 몽골에서는 별똥별이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약간은 슬픈 이야기도 가이드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의미든 아름다운 현상임엔 틀림없다.
11. 날씨
바람이 많이 분다. 때로는 강렬하다. 어쩌다보니 대부분의 날에 비가 오거나 구름이 꼈는데, 그덕에 제법 시원하게 다녔다. 그렇지 않은 날엔 꽤나 더워 항상 비가 오길 바랬다. 몽골의 비는 신기하게도 전혀 우중충하거나 감성적이지 않다. 그저 시원하고 상쾌하다. 밤엔 제법 추울 수도 있는데, 그덕에 장작을 이용해 난로를 피우는 낭만적인 경험은 보너스다.
새벽에 조금 추워 깼는데, 난로의 불이 꺼져간다. 넣어둔 장작이 다 탄 것이다. 몇개의 장작을 더 넣고 잠시간 호호 불어주니 다시 불이 타오른다. 아침까지 불이 남아있길 바라는 욕심에 장착을 가득 채웠다. 그랬더니 곧 불이 활활 타오르고, 나무가 펑펑 터지며, 방이 아주 더워졌다. 옆에서 자고 있던 미씽이 너무 덥다며 무슨짓을 했냔다. 더위를 피해 잠시 밖으로 피신하고 보니, 하루종일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 개어 별들이 총총하다. 게르 위로 솟은 연통에서 연기가 폴폴 나온다.
※ 경고 : 다만, 차멀미를 하는 사람들에게 몽골 장기 투어는 많이 괴로울 수 있다. 하루에 기본 너댓시간은 차를 타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은 대부분 비포장인데, 어떤날은 하루종일 펑펑 튀겨진다.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 호도협 트레킹 -> 샹그릴라 -> 메리설산(페이라이스) -> 리장 -> 시안 -> 베이징
7. 몽골 : 울란바토르 -> 몽골 투어(고비, 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