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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Jul 17. 2016

잔지바르에서

홍씨의 세그림. 18화

 몽골에서 4번의 비행을 거쳐 인도양의 흑진주라는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도착했다. 마지막 비행은 경비행기를 이용했는데, 낮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섬과 그 주변 바다는 정말 진주라 불릴만 하다. 얕은 바다부터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곳까지 모두 옥빛뿐. 섬 주변의 새하얀 모래들, 그 위로 넘실대는 바다의 빛깔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그 풍경 그대로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엉덩이가 납작해지는 댓가를 치뤄야했지만, 여하튼 이 풍경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그 이후로 내 엉덩이는 모가난 모양새가 되었다는 풍문이...).


 먼저 잔지바르의 번화가인 스톤타운과 그 주변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3일을 보냈다. 예전엔 노예들을 거래하거나 가둬두었다는 Prison Island는 현재 초대형 육지 거북이들이 점령을 해버렸고, 섬 해변에선 강한 바람과 파도에 밀려 고작 10분간의 해수욕 사투를 벌여야 했다. 거리와 건물들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산이라는 스톤타운의 골목골목을 헤매며 과거의 유럽 혹은 중동은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아무것도 아는바가 없어 아무렇게나 상상해버렸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해변에서 뛰노는 현지 청년들도 흘끗흘끗 훔쳐보았다. 여담이지만, 흑인들은 숨만 쉬어도 근육이 생긴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대부분의 흑인 청년들은 몸이 좋아 부대끼기 부담스럽기도 하고, 뚫어져라 쳐다보면 뭔가 실례가 될 것도 같아 우리는 그들을 훔쳐볼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횡설수설하는 내 글과 위축된 내 마음... 부디 힘내라. 쨋든 생소함에 긴장되는 재미가 있고,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이곳은 해산물을 먹기에도 아주 좋다. 사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서 어디 해산물이 더 싼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동남아시아 국가에선 해산물보다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이곳에선 그런 음식을 찾기가 쉽지 않아, 반강제적으로 해산물을 괜찮은 가격에 자주 먹게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때론 이렇게 좋은 것일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3일 후엔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Matemwe 해변으로 숙소를 옮겼다. 숙소 앞 담장 넘어엔 바로 해변과 바다가 펼쳐져있어, 담 안쪽의 썬배드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물엔 해조류가 조금 떠다니고 조수간만 차가 너무 커서 해수욕을 하기엔 조금 위험한 곳이지만, 그냥 바다를 바라보며 쉬기엔 정말 좋다. 아침엔 물고기를 잡는 것 같은 현지인들이 해변 곳곳에 퐁퐁 서있고, 작게는 서너명 많게는 열댓명이 몰려다니며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도 있다.

서로를 구경하는 우리와 현지 아이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특히 아이들. 내 머리속의 편견과 오만이 합쳐져 자연스레 생겨난 생각들. '내가 가진 것들 중 여기 아이들에게 줄만한게 있을까?', '뭘 주면 좋아할까?', '아이들은 많은데 한두개만 주면 서로 가지려고 싸울 수도 있진 않을까?', '오래된 슬리퍼를 버리고 싶은데, 여기 어려운 사람에게 주면 좋아하진 않을까?'. 잘은 모르지만 내가 한 수많은 저런 건방진 생각 중 몇가지는 맞는 생각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달라고나 하던가? 아니 난 왜 애초에 이들이 그런 것들을 좋아할거라 생각한걸까? 이곳의 현실 여부를 떠나, 너무 오만한 생각은 아닐까 곱씹어 본다.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은 사람을 함부레 잘난척 가진척 돕겠다는 발상이라니... 비슷한 생각을 며칠동안 간간히 해보았다. 나는 이들을 모르고, 이들이 바라는 미래도 모른다. 그렇다고 단지 그냥 여행자로 휙 지나가는 것은 또 괜찮은걸까? 이미 이들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어떤지 알고 있는데... 모르겠다. 이곳을 떠나면 이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또 그냥 흘려보내겠지만, 언젠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내안에 쌓인 이런 생각들이 나를 조금 더 현명한 길로 이끌어 주길 바라본다.


 썬배드에 누워 쉬고 있는데, 멀리서부터 아이들이 왁자지껄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해변을 따라 걷고 있으리라. 웬일인지 미씽이 그 방향으로 "잠보잠보"하며 손을 흔들었고, 곧 열댓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몰려와 담장 넘어에 주루룩 섰다. 우리가 신기한지 한참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온다. '잠보'니 '앗살라 말리이꿈'이니 내가 아는 스와힐리를 몇가지 건네보았으나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한참을 떠들던 녀석들은 우리 숙소 직원에 의해 다시 우루루 몰려갔는데, 그 모습들이 아주 귀엽다. 다시 한번 헝크러진 내 머리속엔, 담장넘어 아무렇게나 우리를 구경하던 아이들의 개구진 모습만이 선명하다.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 호도협 트레킹 -> 샹그릴라 -> 메리설산(페이라이스) -> 리장 -> 시안 -> 베이징
7. 몽골 : 울란바토르 -> 몽골 투어(고비, 중앙) -> 울란바토르
8. 탄자니아 : 잔지바르


거북이들이 점령한 Prison Island, 무서운 이름과 달리 너무 아름답다
스톤타운의 거리
스톤타운의 선착장
스톤타운의 선착장
모여서 놀고 있는 아이들
숙소 앞 전경
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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