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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Sep 04. 2016

케이프 타운 - 마음대로 상상하기

홍씨의 세그림. 23화

 아프리카에 오기 전부터 남아공은 사실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범죄율로 악명 높은 요하네스버그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종차별 정책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고, 여행 중 만난 어떤이는 인종 간 빈부격차가 심해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나라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편 몇몇 사람들은 남아공이 너무 좋다고 꼭 가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너무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들이 많고, 물가도 싸고, 뭐 여러가지 이유로 정말 좋단다. 그런 말들을 들을때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걸까 하는 의문만을 품을 뿐, 크게 기대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별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까, 실제로 도착한 케이프 타운은 우리에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선 이곳은 말 그대로 도시다. 유럽 어느곳의 대도시와 비슷할 것 같다는 느낌.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세계 각국의 체인 음식점들과 브랜드들이 도시 곳곳에 입점해있다. 여태까지는 보기 힘들던 다른 나라 음식을 파는 식당들(일식, 멕시코식 등) 뿐만 아니라, 한식당도 있다. 물론 여전히 안전하지만은 않은 도시라 밤에 이곳저곳 나돌아 다닐 수는 없지만, 일부 거리에 한해서는 해가 지고도 놀러다닐 수 있다. 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약 두달간 아프리카를 돌아다닌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


 백인만 가득할 줄 알았던 번화가에는 의외로 흑인과 인도인처럼 보여지는 사람들도 아주 많고, 소수의 중국/일본/한국인들도 돌아다니고 있다. 관광객도 아주 많아서, City Tour Bus 이층 좌석에는 항상 사람이 붐빈다. 


 가장 멋진 점은 이거다. 도시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졌고, 도심 뒤로는 멋드러진 산('테이블 마운틴')이 우뚝 서있다는 것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관광지구라던가 부자동네들이 밀집해 있는데, 버스에 올라 도시를 둘러보고 있으면 그 이유를 쉽사리 알 수 있다. 물개와 고래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바다를 벗어나 조금만 달리면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양 옆으로 늘어선 숲길로 들어서게 되고 저 뒷편엔 구름을 위에 얹은 테이블 마운틴이 보여진다. 산을 배경으로 달리다보면 또다시 확 트인 바다가 나타나고, 해안가에서부터 직각으로 서 있는 절벽을 따라 차를 달릴 수도 있다. 그렇게 도착한 또 어떤 바다에는 심지어 펭귄도 살고 있다!

 이곳의 안타까운 역사와 현실에 비해, 너무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매력적인 도시임은 부정할 수가 없겠다. 거리를 걷다가, 높게 세워진 한 건물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이름이 떡하니 붙은 것을 발견했는데, 그때부터 우리는 한번쯤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허황되지만 즐거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데 나와있는 한국 기업에 의외로 취업하기 쉬울지도 몰라. 한국에서 너무 머니까 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잖아."

 "그럼 우리 한 이삼년만 살아볼까? 한명이 먼저 취업하면 그동안 다른 한명은 영어 공부도 하고, 직업도 알아보는 거야."

 "집은 어디로 구할까? 바닷가로 하면 너무 비쌀까? 외국은 전세가 없고 전부 월세라던데, 그래도 경험삼아 괜찮을거야."

 "주말엔 다이빙도 하러 다니고, 이곳저곳 놀러다니자. 재미있겠다!"

 "여긴 임금이 얼마나 될까? 중고차도 하나쯤 사야겠지?"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우린 남아공 채용 공고를 볼 수 없었다. 남아공은 커녕 아프리카 어디에도 없었다. 있다했어도 아마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상관없다, 그저 쉽게 떠오른 즐거운 상상이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린 제법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고, 또다른 꿈을 꿀 수 있었다. 어릴때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내게, 케이프 타운은 좋은 상상의 화두가 되어준 것이다.


 케이프 타운을 떠나더라도 종종 이렇게 상상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그에 들뜨고 싶다. 거창할 필요도 없고 환상적일 필요도 없다. 개중에 몇가지를 실천으로 옮길 수도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 역시, 마음대로 하는 상상이란 정말 멋진 일이다!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 호도협 트레킹 -> 샹그릴라 -> 메리설산(페이라이스) -> 리장 -> 시안 -> 베이징

7. 몽골 : 울란바토르 -> 몽골 투어(고비, 중앙) -> 울란바토르

8. 탄자니아 : 잔지바르 -> 아루샤 -> 세렝게티 국립공원 -> 아루샤

9. 짐바브웨 : 하라레 -> 불라와요 -> 빅토리아 폴즈

10. 잠비아 : 리빙스톤

11. 나미비아 : 빈트후크 -> 나미브사막(세스리엠) -> 월비스베이 -> 스와콥문드 -> 스켈레톤 코스트 -> 에토샤 -> 빈트후크

12. 남아공 : 케이프 타운


케이프 타운 요약본
난 펭귄으로서의 길을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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