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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Sep 29. 2016

남아공 - 정든 물건에 대한 고찰

홍씨의 세그림. 26화

 난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버리는 행위에 조금 약한 편이다. 그래서 지갑엔 항상 영수증 따위의 종이들이 한두장씩 남겨져있고, 차 내부 수납공간엔 어딘가에서 받아온 팜플렛들이 수두룩하다. 귀찮아서 버리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론 혹시나 한번이라도 더 볼일이 있을까 싶어 남겨둔다.


 반면 어떤 물건에 특별히 정을 주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성격은 아니다. 때때로 아끼는 물건이 있긴 하지만, 그 물건 자체에 대한 애정이라기 보다는 그냥 값비싼 물건이라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9월 말에 접어들며 남아공을 떠나 유럽으로 갈 날이 다가왔다. 그 말인 즉, 여태까지 알차게 사용해 온 캠핑 용품들을 팔아야할 때가 되었다는 것.  녀석들(캠핑 의자, 가스 버너, 냄비, 매트, 램프, 조리도구 등) 덕에 돈도 꽤나 아꼈고, 하루하루 단순하게 사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쩐 일인지 누군가에게 팔기가 아쉽다. 


 특히 텐트, 나미비아부터 약 한달 반을 우리와 함께 해온 우리의 '고북이'. 육각형 바닥에 돔 형태의 2~3인용 텐트인데, 겉이 녹색이라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겼다.  


 레소토에서 하루는 (과장해서) 거의 폭풍이 몰아치듯 바람이 부는 밤을 맞이했다. 옆의 큰 나무에서 나뭇가지가 부서져 천장을 때렸고, 저기 어디선가 천둥 소리가 밀려왔다. 꽤나 춥기도 했고, 고북이가 망가질까 두려워 자다깨길 몇차례. 우리는 무사히 새벽을 맞이했고,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다. 


 때로는 비를 막아주었고, 대부분의 날엔 새벽이슬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었다. 가끔 새들이 고북이 등에 똥을 갈겨 놓을 때도 있었는데, 꽤나 열받는 일이었다. 흙비가 내렸는지 더러워졌을 때는 귀중한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주었다.


 미씽도 꽤나 이런 생활을 즐겼는데, 어느날 내가 왜 그렇게 텐트생활이 좋냐고 물으니.이렇게 답했다.


 "그냥 어릴때 했던 소꿉장난처럼 뭔가 장난치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

우리의 보금자리, 고북이

 그런데 왜 나는 고북이를 아끼게 되었을까? 별로 그런 성격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게다가 왜 특별히 텐트에게만 유독 그렇게 된 것일까?


 미씽과 의견을 나누었다. 게중 가장 비싸서? 아님 가장 크고 눈에 띄어서? 그런 것들 보다는 아마 추억때문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번 더 고민했다. 고북이의 무엇이 우리에게 그렇게 추억이 된 것일까?

 특별할 것 없었다. 그냥 차가운 밤공기를 피해 따뜻하게 잠들었던 날들, 따스함, 포근함. 


 어디서 읽었던 이런 실험이 떠올랐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지만) 새끼 원숭이에게 두 어미를 제공했다. 둘다 기계인데, 한 어미는 새끼에게 시간마다 먹이를 주었고, 한 어미는 언제든 포근히 안길 수 있도록 부드러운 재질로 감싸져 있었다. 새끼가 그 둘에 익숙해질 무렵, 새끼가 어느 어미에 더 의존하는지 알기 위해 과학자들은 갑작스레 새끼를 놀래켰는데, 놀랜 녀석은 포근한 어미에게 달려가 안겼다고 한다.


 어쩌면 우린 정말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힌달이 조금 넘는 캠핑 생활, 의자나 식기, 그 외의 무엇보다 정이든 텐트, 고북이.


 결국 우린 고북이를 중고품 거래 상점에 가서 팔았다. 하지만 우리 생애 첫 '자가 주택'이었던 녀석을 잊지 않을 것이다.


 "고북아,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해라!"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 호도협 트레킹 -> 샹그릴라 -> 메리설산(페이라이스) -> 리장 -> 시안 -> 베이징

7. 몽골 : 울란바토르 -> 몽골 투어(고비, 중앙) -> 울란바토르

8. 탄자니아 : 잔지바르 -> 아루샤 -> 세렝게티 국립공원 -> 아루샤

9. 짐바브웨 : 하라레 -> 불라와요 -> 빅토리아 폴즈

10. 잠비아 : 리빙스톤

11. 나미비아 : 빈트후크 -> 나미브사막(세스리엠) -> 월비스베이 -> 스와콥문드 -> 스켈레톤 코스트 -> 에토샤 -> 빈트후크

12. 남아공 : 케이프 타운 -> 허머너스 -> 모슬 베이 -> 가든루트 -> 포트엘리자베스 -> 블롬폰테인

13. 레소토 : 세몬콩(+모리자)

14. 남아공 : Karoo national Park -> 플래튼버그 베이 -> 나이스나 -> 케이프타운

15. 이탈리아 : 밀라노 -> 베로나 -> 베네치아


슈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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