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의 세그림. 29화
10cm 남짓 되어 보이는 노란 몸통 곳곳에 짧은 돌기가 나고, 꼬리가 뱅뱅 말려 올라간 작고 귀여운 해마가 살고 있다. 녀석들은 주로 해초들 사이에 숨어 있어 찾기가 어렵다는데,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 주변엔 해초와 해면들이 가득하다. 특히 노란 굴뚝 모양의 몸통이 여럿 위로 솟은 해면의 생김새가 독특하고 예쁘다. 다른 물고기들도 많다. 몸통에 두개의 검은 줄무늬를 가진 하얀 물고기들, 꼬리 지느러미가 위 아래로 갈라지고 몇몇이 몰려다니는 검은 물고기들, 어떤 녀석들은 배 부분이 푸르게 빛나고, 어떤 녀석들은 우둘투둘한 형상에 보호색을 띄었다. 파랗고 길다란 곰치같은 녀석은 - 아마 내가 본 놈은 길이가 1m 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 바위 아래 작은 동굴로 쏙 숨어들어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엔 멸치처럼 작은 물고기 수십마리가 몰려다니는데, 해수면 아래까지 내려온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하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물론 배 위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없다. 다이빙을 해야한다. 물 위에선 가끔가다 수면 바로 아래로 헤엄치는 물고기들만을 볼 수 있다. 머리가 약간은 넙대대하게 생겨 귀여운 맛이 있다. 또한 갈매기들이 넓은 바다에 점점이 박혀 녹색의 풍경이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자다르 해안에서 바라보면 앞바다가 광활하진 않다. 바로 맞은 편에 길다란 섬이 있기 때문이다. Ugljan이라는 이름의 섬인데, 해안가를 따라 집들이 늘어섰다. 식당이나 카페도 종종 있어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한잔하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기에 사뭇 좋다. 항구에는 수시로 큰 배가 드나들어, 차나 자전거를 싣고 갈 수도 있다. 배는 늦은 밤까지도 운항을 하는데, 어두워지면 곳곳에 조명이 켜져 그 모습이 제법 화려하다.
자다르 해안에는 산책로도 있다. 올드타운에서부터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많은 이들이 연인과 친구, 혹은 강아지와 함께 그 길을 걷는다. 길 가엔 바다를 향해 설치된 벤치도 더러 있어, 늦은 오후부터 일몰을 기다리기에 좋다.
해가 진다. 어떤 유명인은 자다르의 일몰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라고 칭찬했단다. 그러나 굳이 비교할 것 없이, 석양은 언제나 아름답다. 바다 건너 섬 뒷쪽 하늘이 붉어진다. 정확히는 주황색이다. 섬과 바다를 모두 덮은 주황빛 하늘이 된다. 구름과 바다는 점점 검어진다. 여전히 파도는 잠잠하지만 분위기는 약간 달라진다. 낮엔 평화롭기만 하던 바다가 신비로운 느낌을 품는다. '어두워진 저 물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낮부터 떠다니는 작은 배들은 검은 그림자로 숨어들고, 일부는 작고 가느다란 불을 밝힌다. 여객선은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을 하고도 묵묵하게 바다 위만 오갈 뿐이다. 건너편 섬의 집들과 가로등에도 주황색 불이 들어오고 곧이어 바다와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면, 그렇게 자다르의 밤풍경이 완성된다. 그때부터 바다는 오직 소리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지 1주일, 정말 별일이 없었다. 할일도 많지 않았다. 오래 입어 가랑이 사이가 헤지기 시작한 청바지를 수선집에 맡겼다. 청바지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수명이 늘어났다. 미씽은 머리를 했다. 여행을 떠난 후 한번도 미용실을 간 적이 없었기에 머리카락을 제법 길게 잘라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용사 아주머니와 통역을 맡아준 숙소 주인 아주머니도 머리가 잘 됐다며 함께 기뻐했다. 자다르에서의 1주차, 우리의 생활은 말그대로 무난하다.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 호도협 트레킹 -> 샹그릴라 -> 메리설산(페이라이스) -> 리장 -> 시안 -> 베이징
7. 몽골 : 울란바토르 -> 몽골 투어(고비, 중앙) -> 울란바토르
8. 탄자니아 : 잔지바르 -> 아루샤 -> 세렝게티 국립공원 -> 아루샤
9. 짐바브웨 : 하라레 -> 불라와요 -> 빅토리아 폴즈
10. 잠비아 : 리빙스톤
11. 나미비아 : 빈트후크 -> 나미브사막(세스리엠) -> 월비스베이 -> 스와콥문드 -> 스켈레톤 코스트 -> 에토샤 -> 빈트후크
12. 남아공 : 케이프 타운 -> 허머너스 -> 모슬 베이 -> 가든루트 -> 포트엘리자베스 -> 블롬폰테인
13. 레소토 : 세몬콩(+모리자)
14. 남아공 : Karoo national Park -> 플래튼버그 베이 -> 나이스나 -> 케이프타운
15. 이탈리아 : 밀라노 -> 베로나 -> 베네치아
16. 슬로베니아 : 류블랴나 -> 블레드 당일치기
17. 크로아티아 : 자그레브 -> 오토챜 -> 코레니차(플리트비체) -> 자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