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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Oct 30. 2016

자다르 - 조 여사의 집

홍씨의 세그림. 30화

 조금 더 젊었던 시절, 조여사는 요리사였다고 한다. 하루는 우리를 포함한 여러 숙박객들에게 크로아티아식 펜케이크를 구워주었는데, 고소하니 참 맛있다. 후라이펜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아주 얇게 펴서 구워낸다. 노릇하게 익은 펜케이크를 접시 위에 올리고 소량의 잼을 펴 바른 뒤, 돌돌 말아서 먹는 식이다. 엄마들이 딱히 할 음식이 떠오르지 않을 때, 이렇게 펜케이크를 종종 만든다고 한다. 


 펜케이크에 이어 프레툴레(?)가 나왔다. 밀가루, 계란, 요거트, 사과, 술 등을 함께 반죽해 숙성시키고, 달궈진 기름에 동그랗게 튀겨낸 후 설탕에 찍어먹는다. 약간 우리나라의 찹쌀 도넛같은 맛이다. 식감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 주로 크리스마스 이브나 명절 전날에 먹는 간식같은 거란다. 


 티비를 보던 조여사의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 와인을 권했다. 내가 좋다고 하니, 컵에 와인을 따른 후 물을 함께 부어주었다. 크로아티아에선 이런식으로 자주 먹는다며 조여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물같기도 하고 와인같기도 한 맛이다. 한잔을 비우니 살짝 얼굴이 붉어짐과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나는 술이 약하다).


 조여사는 물론 한국 사람이 아니다. 나와 미씽이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 아주머니다. 크로아티아 자다르 토박이. 60에 가까운 그녀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기고 자주 깔깔 웃는다. 숙박업을 시작한지 꽤 되었다고 하는데, 자기의 집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덕에 여전히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그런 사실이 참 행복하다고도 말했다. 


 또 하루는 다른방에서 장기로 머물고 있는 니나가 케이크를 구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빵집에서 제빵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푸딩같은 느낌의 케이크를 만들었다. 다 같이 모여서 나눠먹는 중 누군가 '크로아티아에선 여자아이가 케이크를 구울 줄 알게되면 결혼할 준비가 된거다'라는 말을 했다. 물론 옛날 말이긴 하겠지만, 여튼 이곳에선 대게 결혼을 일찍한단다. 보통 20세 초반에 결혼을 한다는데, 최근의 한국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케이크에 관한 인상 깊은 이야기 중 하나가 있는데, 조여사의 어린시절 이야기이다. 그녀의 어머니께선 매일매일 케이크를 구우셨다고 한다. 주중엔 작은 컵케이크를, 주말엔 대게 아주 큼직한 케이크를 구우셨단다. 그녀의 집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집도 전부 그런 식이었기에, 동네 여자 아이들이 모이면 오늘 자기네 엄마는 무슨 케이크를 구워주었는지, 저번에 너무 큰 케이크를 구워놔서 매일 똑같은 것을 먹고 있어 지겹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다고 한다. 약간은 동화 속 평화로운 마을같은 이야기다.


 반면 가장 현실적이었던 이야기는 현재 크로아티아의 경제상황에 대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충분한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상상했던 이곳의 삶과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삶은 많이 다르구나', 혹은 '세상 어디든 편하기만 한 곳은 없구나' 와 같은 생각을 하게된다. 


펜케이크와 프레툴레(?, 정확한 이름은 몇차례 들어도 모르겠다)


 조여사의 집은 주황색 지붕의 2층 주택이다. 1층은 손님들의 공간이고, 조여사와 그녀의 가족들은 2층에서 생활한다. 찰랑찰랑한 하얀색의 털을 가진 강아지, 쉘리도 그녀의 가족에 포함된다.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달려나와 꼬리를 흔들고 폴짝되며 반가워한다. 가끔은 혼자 나가 동네 산책을 하고 오기도 하는 듯 하다. 자유로운 영혼이라고나 할까.


 걸어서 7~8분 거리에 맛 좋은 현지식 식당이 있어, 몇차례 들렀다.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항상 몇분 기다린 후 자리에 앉았다. 갈비찜과 비슷한 맛의 '굴라쉬'와 왕돈가스 같은 맛과 모습의 '비엔나/파리지엥/자그레브 스테이크'. 양도 푸짐해서 더 좋다.


 10분 정도 걸으면 해변에 닿을 수  있다. 인근에 섬이 많아서일까? 자다르의 앞바다는 언제나 온화한 편에 가깝다. 어찌보면 지루하고, 그 지루함이 또 특별하다. 바다에 대한 환상을 가진 나는 거의 매일 그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에 대한 환상이 없는 미씽도 나를 따라 매일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엔 항상 작은 배들이 아무런 목적을 가지지 않은 듯 떠다닌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언제나 가장 큰 숙제이기에, 그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간의 지루함, 약간의 여유로움, 약간의 특별함이 함께한 2주차가 그렇게 지나갔다.


※ 그동안의 경로

1. 한국 : 출발

2. 태국 : 푸켓 -> 방콕

3. 캄보디아 : 씨엠립

4. 태국 : 방콕 -> 치앙마이 -> Elephant jungle sanctuary -> 빠이 -> 치앙마이

5. 미얀마 : 만달레이 -> 바간 -> 인레호수 -> 양곤

6. 중국 : 쿤밍 -> 리장 -> 호도협 트레킹 -> 샹그릴라 -> 메리설산(페이라이스) -> 리장 -> 시안 -> 베이징

7. 몽골 : 울란바토르 -> 몽골 투어(고비, 중앙) -> 울란바토르

8. 탄자니아 : 잔지바르 -> 아루샤 -> 세렝게티 국립공원 -> 아루샤

9. 짐바브웨 : 하라레 -> 불라와요 -> 빅토리아 폴즈

10. 잠비아 : 리빙스톤

11. 나미비아 : 빈트후크 -> 나미브사막(세스리엠) -> 월비스베이 -> 스와콥문드 -> 스켈레톤 코스트 -> 에토샤 -> 빈트후크

12. 남아공 : 케이프 타운 -> 허머너스 -> 모슬 베이 -> 가든루트 -> 포트엘리자베스 -> 블롬폰테인

13. 레소토 : 세몬콩(+모리자)

14. 남아공 : Karoo national Park -> 플래튼버그 베이 -> 나이스나 -> 케이프타운

15. 이탈리아 : 밀라노 -> 베로나 -> 베네치아

16. 슬로베니아 : 류블랴나 -> 블레드 당일치기

17. 크로아티아 : 자그레브 -> 오토챜 -> 코레니차(플리트비체) -> 자다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인근 마을 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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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여사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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