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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씨 Mar 06. 2017

아르헨티나 엘 찰텐 - 피츠로이 해맞이 등산

홍씨의 세그림. 46화

 "우으으..."


 새벽 1시 기상. 저절로 신음이 터져나왔다. 엘 찰텐의 명물 피츠로이 뷰포인트(전망대?)에서 해가 뜨는 걸 보기 위해서다. 정확히는 해가 뜨는 모습이 아니라 그 해에 의해 붉게 타오른다는 피츠로이 봉우리를 보기 위해서.


 대강 샌드위치에 요거트 하나를 챙겨먹고 숙소를 나서니 새벽 2시. 마을을 가로지르는데, 어떤이들은 여전히 술집에서 술을 한잔 하고 있다. 묘한 시간, 묘한 기분이다. 이 시간은, 누군가에겐 아직 어제에 머물렀고, 다른 누군가에겐 어느새 새로운 하루로 다가온다.


 마을을 벗어나니 사람은 커녕 빛 한점조차 없다. 덜컥 무서운 마음이 샘솟지만(난 원래 겁이 많아 절대 밤에 산을 오르지 않는다), 이왕 출발했으니 한번 길을 따라 나서본다.


 주위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오직 손전등의 빛이 비춰지는 곳에만 길이 있고, 숲이 있고, 산이 있다. 겁먹은 마음에 몇차례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갑작스런 움직임에 가방에 매달아둔 모자가 가방을 스치며 '핏!' 하는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몇번을 그러고 나니 스스로가 바보같았지만, 별 수 없이 다음엔 또 놀란다.


 그렇게 무서울 때는 하늘을 올려다 봤다. 어제의 맑았던 하늘이 오늘까지 이어져, 밤 하늘엔 별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검은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과 별똥별. 그리고 그들을 가로지르는 한줄기 희뿌연 은하수. 무서웠던 마음이 진정되고 위안이 된다. 다시 용기를 갖고 올라갈 마음이 솟는다.


 가끔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멀지 않은 곳에 흐르고 있을 개울물 소리만이 들려온다. 한번은 나무다리가 놓여진 작은 개울을 지나는데, 물 속의 물풀이 물결을 따라 하늘대는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띄었다.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강아지 꼬리처럼 복슬복슬한 특이한 풀이 개울바닥에 한가득 자랐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개울물 흐르는 소리에 맞춰 가벼운 춤을 춘다. 어쩜 그리도 부드러운지, 그들은 물과 같았다.


 정상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니 낡이 밝아온다. 거대한 성벽처럼 사방을 둘러싼 산의 능선과 그 중앙에 우뚝 솟은 암벽, 피츠로이 봉우리. 왕이 살 것만 같은 탑처럼 높고 웅장하다. 봉우리 주위엔 하얗고 푸른 눈과 빙하가 거칠게 자리잡았고, 그 밑으론 푸른 호수가 이어진다. 해가 뜨며 노랗게 변해가는 피츠로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와~ 이 길이 이렇게 생겼었네!?'


 내려 오는 길엔 말그대로 만물이 깨어났다. 빙하에서부터 시작되었을 수많은 개울들과 강, 그들이 잠시 쉬어가는 다양한 빛깔의 호수들, 나무와 꽃, 새들이 지줄대는 소리까지. 긴 산행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 난 두번다시 이런 산행을 하진 않을거다. 역시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상으로 그날 오후 난 꿀처럼 단 낮잠을 잤다.



자세히 보면 피츠로이의 실루엣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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