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카나 Aug 10. 2019

독서하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함정

당신도 혹시 독서 강박증?


게임을 통해 배운 삼국지

그때 그 시절, 삼국지 게임을 기억하는가?


  초등학생 때 나는 정말 많은 게임을 즐겼었다. 외할머니를 옆에 앉히고 직접 롤러코스터를 만들어 열심히 시연하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즐기억도 난다. 무엇보다 기억나는 건 게임 <삼국지 시리즈>. 나는 <만화 삼국지>와 더불어 게임 삼국지를 통해 삼국지를 이해했다. 관도대전 배경에서 유비를 선택하면 게임을 이기기 오래 걸렸고, 조조를 선택하면 기반이 좋았던 만큼 천하통일하기가 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그때 원소를 선택해본 적은 없었다.) 이렇듯 우리가 삼국지 이야기를 알게 된 경로는 정말 다양하다. 누군가는 책 <삼국지>를 통해서 배웠다. 반면에 <만화 삼국지>를 너무 많이 읽어 제갈량이 나오는 편마다 너덜너덜한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꼭 <삼국지연의>를 읽어야 삼국지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삼국지 게임과 만화를 통해 그 시대 장수들의 일대기를 간접 경험했다. 굳이 삼국지 10권 세트를 꼭꼭 씹어 삼켜서 유비의 사상은 어떻고, 제갈공명의 전략 그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삼국지를 이해한 걸까? <쾌락독서>를 읽은 이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읽는 것은 수용자의 몫이다.

아직도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책이었는지 싶다.
후일 나는 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것인지 메를로퐁티와 니체의 책을 서점에서 몇 장 넘겨보고는 '짜샤이 이론'에 따라 재미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덮었다. (p.140)


  <쾌락독서>에서는 독자가 그 책을 처음 접한 이후 미리 보기에서 흥미를 느껴야 한다는 일명 '짜샤이 이론'을 설명한다. 독서의 맛보기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으면 계속 읽게 되고 책의 내용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종종 재밌는 책을 골라 읽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읽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쾌락'을 느끼며 읽은 책이 머릿속에 더 오래 남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중고등학생 때 나는 어머니가 추천한(말이 추천이지 책을 사서 책상 위에 올려두신) '민음사' 출판사의 다양한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때에는 그 책들을 읽을 만큼 문해력이 좋지 않았다. 문해력이 충분하지 않으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것보다 스타크래프트 한 판이 더 재밌었다. 그때 하도 민음사의 책에 시달려서(?) 엄마한테 "민음사 책들은 다 불태워버리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마찬가지로 삼국지를 만화나 게임이 아닌 압도적인 양의 <삼국지연의>로 접했다면, 삼국지 책을 다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외쳤을 것이다.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다른 책들도 내용을 재밌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게 만화로 원전을 쉽게 풀어쓴 책이어도 상관없다. 창작자를 떠난 텍스트는 수용자마다 본질은 비슷할지 몰라도 이해하는 내용이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제대로 이해했다'의 기준은, 확실히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게 어렸을 때 억지로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 당연히 기억에 1도 없다. '억울한' 민음사만 탄생했을 뿐.


노동과 즐김의 차이

꼭 그 책이 아니어도 비슷한 내용을 더 쉽게 설명하는 다른 책들이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책을 백 번 천 번 읽고 있는 사이에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세상 자체가 달라져버린다. (p.168)

  

  우리는 고전을 읽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 고전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억지로 계속 읽어야 할까? <쾌락독서>의 저자는 능력도 안되는데 원전을 꾸역꾸역 읽은 사람은 노동만 했을 뿐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책을 백 번 천 번 읽다보면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따끔한 지적을 빼먹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억지로 그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세상의 비밀이란게 있을까? 내용을 어떻게 익혔더라도, 재밌게 익힌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 내용을 잊게 될 확률이 크다.


  다행히 어려운 책의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쉬운 책들이 있다. 최진기 씨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수능 사회탐구 강사 시절에도 그랬지만,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데에 확실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강의 내용에 오류가 많다는 비판도 있지만, 내용의 오류를 거르는 건 수용자의 몫도 있으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지구 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들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그의 능력은 대단하다. 이렇게 쉽게 책이나 미디어, 콘텐츠 등을 통해서 어려운 내용을 재밌게 이해하는 게 더 쉽게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 코스피 2000 찍었을 때 뛰어내리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강박증 길들이기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독서한다면 과부하가 오기 마련이다.
현재 쓸모 있어 보이는 몇 가지에만 올인하는 강박증이야 말로 진정 쓸데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고 미래에 무엇이 어떻게 쓸모 있을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엇이든 그게 진짜로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도리가 없다. (p.259)


  지금까지의 나는 성장을 위해 자기계발서를 위주로 독서를 해왔다. 자기계발서들이 당장 내 성장에 쓸모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재미없는 책을 마주할 때는 독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읽던 책이 재미없으면 그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읽다가 다시 그 책을 읽어보아라.'라는 조언도 따라 해 봤다. 그러나 한 번 재미없는 책은 여전히 재미없었다. 그러다가 <쾌락독서>를 접한 것은 자기 계발서를 읽다가 도저히 재미가 없어서 진정한 독서가 무엇인지 고찰해본 때였다. 즉, 재미없는 책을 계속 정독하여 나타난 '독서 강박증'에 걸려 증상이 나타난 시기였다. '이렇게 계속 읽는 게 맞나?' 스스로를 진찰해보았다. 지금까지 읽은 자기 계발서 몇십 권 중에, 진정으로 내용을 담아두고 실천하는 책은 몇 권이나 되는지 계산해보았다.


  결과는 씁쓸했다. 채 열 권도 안되었다. 그 열 권 남짓한 책들은 무슨 책인가 하니, 내가 재밌게 읽은 책들이었다. 재밌게 읽은 덕에 와 닿은 내용도 많았다. 덕분에 내용들을 실천하는 것 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재미없던 다른 유명한 자기계발서, 그거 하나 억지로 메모해가며 읽는다고 남는 거 많이 없었다. 쾌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재밌는 책, 난이도가 적절한 책을 고른다면 더 많이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흥미 있는 자기계발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분명히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자기계발서가 아니더라도 배울 게 많은 재미있는 책, 정말 많았다. 굳이 읽기 싫은 유명한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독서 강박증을 느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쾌락독서>를 이 시기에 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순간이었다. '독서 강박증'을 느낀 시기에 접하지 않았더라면 '에이, 재미없고 이해 안 되는 책도 억지로 꾸역꾸역 읽어야 배우는 게 있지.'라고 투덜댔을 것이다. 재미없고 와 닿지도 않는 책의 내용을 억지로 적어가면서 체득하려고 한다. 그렇게 남아 있는 알맹이는 없다. <쾌락독서>가 이런 시기의 나에게 큰 고찰을 던졌다.


그 책들은 그저 그 시기에 거기 있었기에 우연히 내게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p.15)





참고

<쾌락독서> - 문유석 저


이미지 출처

1.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bana123321&logNo=220129076718&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삼국지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