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을 읽기 전에
어려운 책을 집을 때는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렇게 불안할 때 좀 더 패기를 가지고 어려운 책을 펴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다. 대신에 그 책을 읽기 전에 좀 더 쉬운 책을 읽는 단계를 거친다. 실력을 쌓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려운 책부터 읽으면 도중에 쉽게 그만두기 때문이다.
실력이 모자라면 책의 내용을 잘 흡수하지 못할뿐더러 흥미를 붙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다른 쉬운 책들로 독서 실력을 쌓고 다시 어려운 책에 도전한다. 어려운 책을 빨리 안 읽는다고 그 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당장 그 어려운 책을 읽고 싶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그 책을 쉽게 풀어쓴 책을 먼저 읽어 보는 것이다. 만화든 글이든 방식은 상관없이 말이다. <21세기 자본>이란 책을 예시로 들어보자. 이 책에 담겨있는 경제학적 내용은 내겐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읽기가 무서웠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나는 쉽게 풀어쓴 책을 먼저 읽었다. 바로 <최진기와 함께 읽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최진기 강사님의 시선으로 <21세기 자본>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과연 나는 도움을 받았을까? 저자가 내용을 어떻게 쉽게 풀어썼는지, 쉬운 책을 읽음으로써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 개인적인 생각을 써봤다.
어떤 사람의 연구 결과인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학문적 준거집단을 봐야 합니다. 어떤 걸 목표로 하고 있으며,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를 알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최진기와 함께 읽는 21세기 자본>(p.42)
저자는 위 문구에 충실한다. 책의 내용도 목적에 맞춰서 써 내려갔다. 책을 읽을수록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피케티가 따르고 있는 사상이나 방법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용을 마치 대치동 명강사처럼 쉽게 설명했다. 덕분에 이해도 쉬웠다.
링을 보여 주기 전에는 파퀴아오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링이라는 구조를 보여주는 순간 파퀴아오가 복싱이라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게 구조주의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서 구조가 뭔가를 보자는 겁니다. 구조를 파악하고 그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파악하는 겁니다.
<최진기와 함께 읽는 21세기 자본>(p.83)
위와 같은 통쾌한 예시들이 책에 많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쓰는 능력이 있다. 파퀴아오와 링으로 구조주의를 설명한 예시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나면, 어떤 걸 이해할 때 그 어려운 개념을 쉽게 떠올리며 써먹을 수 있게 된다.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피케티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마르크스가 1848년의 상황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무조건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피케티는 경제 결정론자가 아니라 구조주의자입니다.
<최진기와 함께 읽는 21세기 자본>(p.142)
저자는 구조주의가 뭔지, 경제 결정론이 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피케티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도 설명한다. <21세기 자본>은 경제학을 알더라도 읽기 어려운 책으로 소문이 난 책이다.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을 쉽게 쌓아두지 않은 채로 <21세기 자본>을 펼쳤다면, 확실히 몇 장 안 읽고 묵혀뒀을 확률이 높다.
'쉬운 책이라 해서 배울 점이 없는 거 아니냐'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오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경제 지식과 관념이 많이 모자라다는 점을 배웠다. 피케티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읽으면서 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제에 대한 방향성이나 시각을 그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 덕분에 부족했던 나를 발견했다. 피케티의 경제학뿐만 아니라 여러 경제 지식이나 관념을 쉽게 이해한 덕분에, 스스로 아직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종합적으로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피케티가 무조건 옳고 무조건 잘했으니까 피케티를 무조건 따르고 찬양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 세게에서 화제가 되고 논란이 된 책을 통해서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분석과 비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진기와 함께 읽는 21세기 자본>(p.162)
어려운 책을 쉽게 읽으려면, 먼저 그 책을 쉽게 풀어쓴 책을 읽어 보자.
참고
<최진기와 함께 읽는 21세기 자본> - 최진기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