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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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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카나 Jan 11. 2020

2200시간을 쓴 게임 아이디를 지웠습니다

왜 롤 아이디를 지웠나?

약 8년 동안 애지중지하던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라는 게임의 아이디를 지웠습니다. 제 친구가 저를 정신 차리게 만들기 위해서 우발적으로 지운 거는 아니에요. 스스로 계정 삭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롤 아이디를 지우게 됐냐면, 제가 이 게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고, 앞으로도 많이 쓸 것 같아서 지워버렸습니다. 어느 사이트를 통해 알아본 결과, 제가 이 아이디로 약 2,200시간을 게임을 하는데 썼습니다. 물론 PC방 이동 시간 + 통계에 잡히지 않은 프로게이머 준비했을 때의 스크림(연습경기) 시간 + 부계정 플레이 시간 + 기타 등등을 합치면 저 수치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롤에 썼을 거예요.


연애할 수 있는 횟수 : 0회.


약 2,200시간의 플레이 타임은 최근까지도 현재 진행형으로 쌓이고 있었죠. 이젠 더 이상 롤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에 다른 것들도 좀 해보고 게임을 해도 다른 게임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관성의 법칙은 게임에도 통하는 법칙인가 봅니다. 여태까지 롤을 즐겼던 습성을 못 버리고 계속 로그인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확실히 게임 상대로는 의지박약 속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환경을 만들어버렸죠. 아예 못하게요.


이제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아..




8년을 쓴 아이디를

지운 이유

 

앞서 아이디를 지운 이유를 단순하게 '더 이상 롤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아서'라고만 말씀드렸었는데요. 사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몇몇 이유가 더 있습니다.



1. 의지로는 안돼서


지금처럼 글을 쓴다든지, 운동을 하러 간다든지, 뭐 좀 다른 거를 해보려고 했을 때 롤이 항상 발목을 붙잡았었습니다. 이때 게임을 안 하려고 의지를 불태워도, 얼마 뒤 친구와 롤을 즐기고 있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죠.


처음에는 게임을 안 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는 안돼서,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친한 친구한테 계정 비밀번호를 임의로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알려주지 말라고 당부를 했죠. 이제 제가 계정을 쓰려면 게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비밀번호 찾기를 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죠. 친구와의 신뢰도 약간은 깼어야 했습니다. 게임 안 한다고 비밀번호를 바꿔 달라했는데 약속을 어기고 게임을 하는 거니까요.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걸로 해결됐으면 제가 아이디를 지울 일이 없었겠죠?



2. 늙어서


페이커도 인정한 25살의 한계


계정을 지운 이유를 '늙어서'라고 말한 글쓴이의 나이는 20대입니다. 물론 아직도 쌩쌩하긴 하지만, 열심히 치고 올라오는 00년대 생들의 피지컬과 화려함, 그리고 체력을 이길 수는 없더라고요. 이 친구들은 게임을 열심히 하면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거나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어요. 많이 어리기 때문이죠.



3. 더 이상 미련이 없어서


물론 저도 10대~20대 초반에 게임을 했던 만큼 열심히 하면 게임 실력을 전성기 때만큼 끌어올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처럼 즐겁다는 감정을 더 이상 못 느꼈고

학창 시절과 다르게 더 이상 게임 등수가 높다고 해서 얻는 게 없었고

예전처럼 시간을 쓰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나도 컸고

저의 게임 재능으로 갈 수 있는 단계까지는 충분히 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이 게임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재밌지도 않고, 스트레스만 더 받고, 다른 거 할 거는 많고, 등수는 올라가지도 않고, 취미로 하기엔 중독성이 너무 심했습니다.



과거의 저한테

가장 미안했습니다


삭제 직전에 슬픈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과거의 저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고작 게임 아이디 하나를 지우는 거였지만 그 계정에는 고작 게임 아이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었어요.


제가 10대~20대 초반에 저의 미래를 상상했을 때, 분명 지금처럼 게임 아이디를 삭제하는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을 거예요. 최소한 A급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페이커처럼 슈퍼스타가 되는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페이커처럼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재능도 부족했었죠. 상위 0.1%까지 갈 수 있는 재능은 있었지만 프로게이머의 영역인 상위 0.001%의 재능은 없었습니다. 이래 봬도 소수점 몇 단위 차이지만 이게 꽤 큽니다. 수능 1등급과 수능 만점자의 차이랄까요.


게임 아이디를 삭제한 결말을 쓴 입장으로서 과거의 저한테 가장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고 게임에 계속 발목이 잡힐 수는 없었어요. 과거는 과거일 뿐. 앞으로 저의 타이틀에는 다른 이름이 들어가야겠죠.



막상 속은 후련하다


의외로 계정을 지우고 난 뒤에 허무하거나 후회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탈퇴 직전엔 많이 슬펐는데 말이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잘 익은 여드름 하나를 짜낸 후련한 느낌이에요.


탈퇴 버튼 누르기 직전에.jpg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게임이나 다른 무언가가 발목을 잡고 있다면, 저처럼 과감하게 끊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앞길을 막고 있는 건 치워버리는 게 맞습니다. 특이하게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한국 사람들 중엔 과거 게임에 빠졌었거나, 게임 최상위권 등급 출신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 분들도 결국 게임을 끊었거나, 엄청나게 줄이는 데 성공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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