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카나 Mar 20. 2020

뭔가 신경을 끄고 싶을 때


저는 오만가지 일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아 물론 좋게 말한 거고요. 나쁘게 말하면, 잡생각이 정말 많아요. 아까 문 잠그고 나왔겠지? 어 그거 카톡 보냈었나? 통장에 얼마 남았지? 생각하면서 인스타 키고. 간단하게 카카오뱅크를 키는 일인데도 다른 잡생각 때문에 까먹습니다. 아마 잔고는 나중에 술값 계산할 때 확인하게 될 거예요.


사실 제 머릿속 세상뿐만 아니라 지금 이 현실도 너무나도 복잡합니다. 세상이 혼잡한 카오스가 된 덕분에 예전의 호모 사피엔스들이 남긴 인생의 이정표는 정확한지 모르겠어요. 거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이 길로 가라며 조언해주는 선생님들 얘기도 맞는지 모르겠고요. 이런 세상일수록 살아가는 방식은 스스로 알아가야겠죠. 각자의 가치관을 따라서 말이죠.


어차피 인생에 답은 없으니깐.


쉽지 않은 세상 속에서 제 머릿속이 더욱더 개판 오분전이 된다면, 머리털이 빠지는 걸로 혼란이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뭔가 마음을 잡으려 하는 마당에 한 책을 마주쳤는데, 꽂혀버렸습니다. 바로 <신경 끄기의 기술>이에요. 심지어 책 표지엔 애쓰지 말고 노력하지 말고 신경 쓰지 말라고 적혀있어요. 


스읍, 자기개발서라 함은 말이죠. 왜 열심히 안 살았냐며 혼나는 느낌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대다수의 책들이 이러니깐. 근데 이 책은 노력했다고 회초리를 드네요? 아니 이건 영어 단어 열심히 외워왔는데 담임 선생님이 하키채를 드는 상황인데? 음 뭔가 의외였죠. 이 자까님이 하시려는 말씀은 뭘까. 궁금해서 바로 펼쳐봤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야기를 하는 말투와 방식부터가 너무 재치 있는 거예요. 제 취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더더욱 집중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죠.


이 글은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고 나서 제가 어느 것에 신경을 끄게 됐고, 오히려 어느 것엔 신경을 쓰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는 글이에요. 책을 읽고 난 뒤에 어떤 것들은 매일 비트코인 시세와 코스피 지수 변동을 살펴보듯이 엄근진하게 신경을 쓰게 됐답니다. 비록 책 제목이 <신경 끄기의 기술>이지만요. 왜일까요?




왜 노력하지 말라고 할까?


도라에몽은 이러는데.


저는 작가님이 신경을 끄고, 노력하지 말라는 게 대책 없이 YOLO 한답시고 한 번뿐인 인생 즐기고 살자라는 의미로 느껴지진 않았어요. 대신 한 번뿐인 인생이니 생각하면서 살자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가 우리 인생이라는 게임에 코인을 추가해주지는 않잖아요. 모든 걸 경험할 기회는 한 번 뿐이죠. 그러니까 괜히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노력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왜? 돌아보면 시간이 아깝거든. 밀린 과제나 시험이나 브런치 글쓰기 숙제를 앞두고 롤 몇 시간 더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 재밌으면 됐지'라고 스스로 자기 합리화할 수는 있지만 솔직히 아쉬움과 후회가 단 1%도 안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꾹꾹 짜 보면 나올걸요? 여기서는 시험을 앞두고 롤 몇 시간 한 게 작가님이 말하는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이겠죠.


대신 진정으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는 데 시간을 쓰고, 거기에 신경을 쓰고, 애쓰고, 노력을 하자는 거예요. 정말로 의미 있는 게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니까요. 일시적인 쾌락이 아니라 행복 말입니다. 행복. 이게 우리가 맨날 행복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요. 얻는 행복감이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우선시할 만한 것들에 신경을 써서 얻은 행복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쉽게 말하면, 자서전을 쓴다고 했을 때 "나는 이런 걸 했습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쓸만한 것들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뿌듯하고 당당하게 말이죠.


우리 인생에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생산적으로 사용하는 길일 것이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을 찾지 않는다면,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에 신경이 쏠릴 테니까 말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 (p.35)




그래서 신경을

끈 것들



자 이제 앞에서 던진 떡밥을 하나하나 회수해봅시다. 먼저 제가 어떤 것에 신경을 껐는지 이야기해보죠. 물론 작가님도 작가님만이 생각하는 무의미한 것이 있고 이것들에 대해 신경을 껐다고 그러셨지만, 사실 작가님의 말은 좀 추상적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좀 더 현실로 와서 이 글을 쓴 20대 대학생은 무엇에 신경을 껐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우선 리그 오브 레전드

모바일 게임. 폰겜을 사랑하시는 분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부질없었습니다.

제 이어폰의 물질적 가치. 저는 소리만 잘 들리면 됐거든요.

매수 안 했는데 올라가는 비트코인의 시세

몇 주전 6,480원에 판매한 KODEX 200선물인버스2X의 현재 시세

대흉근

브런치 구독자 증가세

잠시나마 글을 잘 쓴다고 느꼈던 자만심

내가 모든 걸 다 안다는 느낌

슬슬 연락이 끊기는 얇은 친구들

일시적인 사랑

미련이 조금 남았던 프로게이머라는 꿈

남을 지나치게 신경 썼던 이타주의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마인드


신경을 끈 게 더 많겠지만 이 정도만 생각해도 벌써부터 몇 개인가요.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저자는 어떤 걸 하찮은 가치로 여겼을까요? 아마스빈 버블티에 빠진 20대 대학생보다 더 대단하고 추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했을까요?


01. 우선, 쾌락

쾌락은 가장 얇은 방식의 행복이라고 해요. 얻기도 쉽고 잃기도 쉬운 거죠. 저도 맞다고 생각해요. 어떤 지갑의 이름을 행복의 총량이라고 했을 때, 쾌락이 이 지갑을 빵빵하게 채워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마치 제 통장처럼요. 쾌락은 크기도 얇고 일시적이기 때문이에요.


02. 물질적 성공

사실 암호화폐 투기 좀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졸업해서 트리마제를 가겠다는 로망이 있으시겠죠. 그래서 저도 완벽하게 포기는 못한 게 이 물질적 성공이에요. 하지만 엄청나게 신경을 쓰진 않아요. 돈은 벌면 벌수록 고파지기 마련이고, 다른 가치들을 보지 못하게 끔 눈을 멀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니 그래도 난 트리마제 융자 없이 사고 한강뷰 보면서 딸기 스무디 한잔 하고 싶은걸. 뭐 어떡하겠어요. 계속 돈 벌 생각해야지 뭘. 물질적 성공은 제가 신경을 아예 꺼버릴 만큼 낮은 가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03. 나는 천재야! 하는 태도

우리는 틀리는 게 일상이에요. 우리 뇌는 시도 때도 없이 기억을 왜곡하기 위해 상시 대기 중이고, 헛소리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열심히 짱구를 굴리고 있죠.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배우질 못하고, 그대로 지식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게 최고의 가치라면, 우선 나는 멍청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죠.


04. 무한 긍정

긍정을 단순히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요. 부정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말이에요. 부정적인 감정은 뭔가 잘못됐다를 알려주는 신호죠. 애인한테 카톡을 보냈는데 잘못 보내서 순간적으로 흠칫하며 가슴을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 때를 생각해보세요. 마냥 긍정적으로 '하하 괜찮겠지?'하고 넘어가는 순간...


???


한결같은 긍정은 일종의 회피일 뿐입니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하면서 맨날 롤 하고 그렇게 2천 판 3천 판이 넘어가는데 실력은 안 늘고, 이를 긍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바라본다? 글쎄요. 이건 바람직한 마인드가 아닌 것 같은데. 현실을 회피하며 게임만 하는 백수와 프로게이머 준비생의 차이점은 부정적인 감정을 피드백 신호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점검하느냐, 부정을 긍정으로 무시하고 회피하느냐에 있는 것 같아요.


자 이제 바닐라 라떼보다도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신경을 껐다면, 신경을 쓰게 된 가치들도 있기 마련이겠죠?




반대로 신경을

쓰게 된 것들


더 나은 가치를 선택하면 더 나은 것에 신경을 쏟게 된다. 중요한 것, 즉 삶에 안정감을 주고 그 결과로 행복과 즐거움, 성공을 전해주는 것에 신경을 쏟을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이라는 건 곧 더 나은 가치를 우선하는 것이며 더 나은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


제가 신경 끈 것들은 저렇게 많지만 의외로 신경을 쓰게 된 것들은 아직까지 많이 찾지 못했거든요. 이게 짠! 하고 바로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몇 가지 살펴보자면요..


05. 같이 으쌰으쌰 하는 것


자기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상대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게 진정한 사랑이다. … 이들은 건전한 관계란 서로의 감정을 조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대의 성장과 문제 해결을 돕는 관계라는 것을 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저자는 으쌰으쌰 화이팅을 누구랑 해야 하는지 말하는데요. 바로 애인입니다. 이 책에서 사랑 얘기를 들을 줄 몰랐는데, 의외로 좋은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건전한 관계란 서로를 조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원해서 행동하게끔 돕는 관계라는 말이 참 와 닿았어요. 서로의 성장과 문제 해결을 도울 때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건전하고 다정한 관계는 각자의 가치관에 명확한 경계를 두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서로 거절하고 거절을 받아들인다는 작가님의 말씀도... 뭔가 멋진 말이라 이 글에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미래의 여자 친구한테 이 책을 권하기로 했어요. 알겠지 자기야?


06. 가치관들.


사람들의 지각과 느낌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근본적인 가치관과 그 가치관을 평가하는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얄팍한 조언에 기대는 건 진정으로 성장하는 길이 아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


저는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가치관 중에서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독자분들한테 정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말 한마디 더하고 어떤 감정을 전달했을 때 저는 살아 있음을 느껴요. 행복해요 아주 그냥. 이걸 표현할 단어를 마땅히 찾지 못해서 영향력이라는 단어를 썼지만요. 제가 원하는 진정한 가치 중 하나는 맞는 것 같아요. 영향력을 포함해서, 어느 가치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인가를 저는 계속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중요한 건 영향력, 사랑, 성장, 건강 등 이런 것들을 소중한 가치관으로 삼으라는 조언이 아니라, 왜 내가 이런 것 들을 소중히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해요. 그래야 진정으로 몸이 움직이거든요.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결국에는 말이죠...


자신이 결국 소멸하리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 행위가 덧없고 피사적인 엉터리 가치를 삶에서 싹 없애주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훨씬 더 고통스럽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신경 끄기의 기술>


결국 모두 죽기 마련이죠. 이번 생에는 호모 데우스가 돼서 불멸의 삶을 누리기엔 그른 것 같으니까. 언젠가는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어떤 것을 해놔야 후회하지 않을지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게 진정한 신경 끄기의 기술의 핵심이고, 행복을 찾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당장 온갖 생각에 머리가 어지럽고 뭐를 해야 할지 그 방향성조차 못 잡으시겠다면, <신경 끄기의 기술>을 추천드릴게요. 최소 어떤 것에 노력을 꺼야 하는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실 거예요. 저는 스스로 중요한 가치들에만 신경 쓰겠다는 교훈을 얻었고요.


이제는 영어 단어를 당당히 안 외워가지 않을까요? 지금은 영어 단어에 신경 쓸 때가 아니거든요. 여전히 담임 선생님이 하키채는 드시겠지만, 덜 아플 것 같아요.








참고


<신경 끄기의 기술> - 마크 맨슨 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